국민대학교

교수님의 서재

Episode 11. 이혜경 교수님 (예술대학 공연예술학부)

 





나에게 서재는 과수원이다

나에게 서재는 과수원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동구 밖 과수원길'이라는 노래에서처럼 과수원이 우리에게 주는 포근한 느낌은 서재에도 있어요. 또 과수원에 가면 이제 막 싹이 나는 나무도 있고, 이름 모를 풀도 있고, 그와 함께 잘 자라난 과실수, 그리고 열매도 있는 것처럼, 서재에도 역시 다양함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수원은 가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서재도 자신을 가꾸어야 하는 공간인 것처럼. 이렇게 많은 이유로 서재는 과수원과 같다고 할 수 있어요. 저의 서재는 이처럼 좋은 토양과 하늘에서 오는 빛과 따뜻한 볕과 물과 공기, 그러한 것들로 인해서 나무가 뿌리내리고 열매 맺고 그 과실이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지는 과수원과 같은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과수원처럼 생명이 자라게 하는, 그런 곳이면 좋겠습니다.

희곡,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솔직한 모습

동화, 위인전, 여행기, 비평문, 시 등 다양한 책을 통해 성장해 왔지만, 지금의 인생에 영향을 미칠 만큼 커다란 충격을 준 책은 대학교 이후에 만난 것이었습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천의 착한여자. 이 희곡을 읽으면서, 연극이 사회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브레히트의 서사극 안에서 읽어낼 수 있는 사회적인 담론과 창의적인 극작법이 만나면서 그 안에 담겨있는, 굳이 우상화하지 않는 인간의 솔직한 모습이 드러났고 그 부분이 크게 와 닿았어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연극으로 이런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고 할 수 있다면, 내 인생을 연극에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책과 연극, 그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

다른 예술분야와는 다르게 공연예술, 특히 연극은 희곡이라는 책 대본 텍스트에서 출발합니다. 공연이라는 다른 형식으로 발전되는 것이죠. 따라서 연극은 문자와 책에 기초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연극을 처음 볼 때는, 책을 읽듯 사건중심으로 보게 되죠. 연극도 그렇고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건, 책 속에 서든 연극 속에 서든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만든 사람들과 그들 사이의 갈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란 겁니다. 어떻게 그들의 생각이나 느낌이 변하는지, 조금 더 연장되면 인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 안에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야하고 살아있는 사회를 만나야한다는 것이죠. 그것이 가족의 작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무엇이 이들의 관계를 가로막고 있는지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는지를 본다면 그것이 더 확장되어 한 마을, 도시, 국가, 그 시대까지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사회적 존재,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보게 되는 것이죠.

드라마 속 인생경험

우리가 인생을 직접 사는 건 한번밖에 없죠. 우리는 '내가 경험하는 인생' 밖에는 살아 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연극과 드라마 속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을 가상으로 한번 살아볼 수 있습니다. 드라마는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기 때문에 인물들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직접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연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러한 과정을 교양과목 강의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드라마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가이드가 필요하다 생각했고, '드라마 속 인생경험'이라는 책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연극 공연에서의 드라마란 무엇인가, 어떤 요소를 보아야하는가를 확인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을 체험하게 하는 공연

책으로 읽는 것을 사람들이 체험하게 해 주고 싶습니다. 그게 바로 공연이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지금의 꿈은 '제시의 일기'라는 책을 공연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을 계기로 스토리텔링 창작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어요. 정말 재미있는 스토리는 사람들 각자가 사는 이야기인데, 그 라이프 스토리를 작품으로 만들어서 스토리텔링 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국제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창작 스튜디오를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나아가 그것을 통해서 다른 작품들도 실현시키고 싶습니다. 좀 더 좁혀서 이야기하면, 한국인들의 이산, 디아스포라들의 삶, 나라를 떠나있지만, 그들로 인해 나라가 확장되는, 그리고 문화와 문화가 만나는 그 곳에서 충돌하거나 갈등하면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를 통해 어떻게 한 사람이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 삶 속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야기 한다면, 그게 바로 사람들에게 다른 삶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책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도 중요하다

저는 공연을 만들 때 시각적인 것을 위해서 화집이나 부록 같은 것을 많이 모으는 편입니다. 창의적인 책을 통해, 언젠가는 그런 책과 같은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상상도 합니다. 보통 책이라고 하면 글만 떠올리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책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도 중요합니다. 저는, '어떻게 만들어서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을 까?' 하는 것을 창의적으로 고민한 책들이 마음에 듭니다. 형식 자체로 흥미를 느끼게 하는 책 말이죠. 그런 책을 저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독서는 혼자가 되는 훈련이다

독서는 혼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혼자 있는데 혼자 있지 않은 것이기도 하죠. 직접 만날 수 있는 사람보다 더 멀리 있고, 다른 시간, 다른 시대에 있었던 사람을 만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독서는 여행 같기도 해요. 요즘 사람들에게 독서가 힘든 이유는, 혼자 있는 것이 많이 두렵거나 지루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 외롭지 않는 훈련이 필요한 것 같아요. 독서는 혼자 있는 그 시간이 얼마나 더 풍성한 시간이 될 수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경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때에 저는 책을 잃고 싶어서 집에 일찍 가고 싶어집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가서 정말 온전히 그 책과 만나는 시간. 그 시간이 그립고 하루 종일 기다려져요. 혼자 있는 시간이 즐겁기 위해서는 그런 '연애'할 수 있는 책이 생겨야하는 것 같습니다.



지식이 지혜가 되는 과정

독서는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해 주죠. 지식을 배울 수 있고 가질 수 있게 합니다. 그 새로운 사실들을 통해 우리의 감성을 열어주는 책도 있고, 영혼을 충족시켜주는 책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통해 감동을 받으면 우리는 어떤 '지혜'를 갖게 됩니다. 지식이 지혜로 변하려면 어떤 감동과, 영적인 터치가 있어야 하고 그것이 비로소 삶과 만나면 지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지식이 지혜가 되는 과정, 그것이 바로 '책'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시의 일기
양우조, 최선화 ㅣ 역 : 김현주 ㅣ 혜윰 ㅣ 1999

공연으로 만들기 위해서 작업 중인 책입니다. 독립운동가 부부 양우조와 최선화의 딸, 제시의 육아일기인데, 당시 임시정부의 모습, 그 시대와 역사를 기록과 사진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역사기록에 그치지 않고 독립 운동가들의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담고 있어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셰익스피어에게 묻다-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알아야 할 6가지
조지 와인버그, 다이앤 로우 | 김재필 ㅣ 한언 ㅣ 2005

마치 '드라마 속 인생경험'처럼, 셰익스피어 희곡에 나오는 인물들을 가지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즉 삶의 지혜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심리학자가 만든 책으로, 고전이라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어떤 다른 의미가 있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인물 유형이 등장하기 때문에 독서에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반지가 왜 내게 왔을까
커터브루노, 짐웨어 | 공경희 ㅣ 두란노 ㅣ 2002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은 영화화 되었습니다. 이 책 역시 반지의 제왕의 내용을 가지고, 거기에 나오는 인생의 여정, 그 모험을 그립니다. 하지만 단순히 스토리보다는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의미를 깊게 파고듭니다. 난쟁이에게 반지가 주어졌 듯 약한 사람에게 오히려 더 커다란 미션이 주어졌다는 것, 원정대가 서로 모이는 것, 선과 악이 싸우는 것. 등 전체적인 단계별로 책이 구성되지만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집중할 수 있습니다.
 
현대예술과 문화의 죽음
한스 로크마커 ㅣ 김유리 |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ㅣ 1993 | 성곡도서관 링크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예술사 책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예술의 흐름을 살펴보는데 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 책의 핵심은 '어떻게 해서 예술가들이 불행해 졌을까' '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버렸을까' 하는 의문에서부터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