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학과 X 미술학부 <팀팀Class><생애사 아트북 만들기 - 구술사와 공동체미술 융합 수업> - 당신의 소중한 기억은 우리의 역사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역사를 거창한 담론이라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 주변의 모든 이야기들이 살아 숨 쉬는 역사이지 않을까. 멀리 향할 것 없이 굴곡의 역사를 지낸 우리 주변 어르신들의 경험이야말로 살아있는 역사책 그 자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아가 이를 아름답고 생생한 그림으로 표현해낸다면 세대와 공간을 아우르는 하나의 의미 있는 교감의 장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팀팀Class] 생애사 아트북 만들기-구술사와 공동체미술 융합수업이다. 국민대학교는 매 학기 서로 다른 두 전공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교육모델을 제시하고 있는데, 한국역사학과 김영미 교수와 입체미술전공 안혜리 교수가 의기투합하여 살아있는 역사책 제작에 나섰다. 학생들은 인근에 위치한 ‘정든마을’이라는 곳의 어르신들을 만나 뵙고 이야기를 들으며 이를 아트북에 하나의 이야기로 표현해냈는데, 생생하고 울림을 주는 박물관이자 미술관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기에 충분했다.
Q. 생애사 아트북 만들기는 어떤 수업인가요?
김영미 교수: 생애사 아트북 만들기 수업은 한 사람의 일생 전체를 이야기로 엮어서 책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미술관과 박물관을 책 안에 구현한다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구술자가 속해있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융합 측면에서 본다면 지역 주민들이 지역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을 담아냈다고 볼 수 있죠.
안혜리 교수: 기본적으로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자기 작품을 만들 때 주도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넣어서 만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입니다. 이번 수업은 타 전공과 융합을 한다는 의미와 함께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시각화하는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문화예술교육 관련 전공 수업을 할 때 공동체 미술을 기획하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해 왔는데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이 문화 매개자로서 자기 아이디어를 탐색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필요에 맞춰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Q. 수업 기간 어떤 모습이 인상적이셨나요?
김영미 교수: 학생들이 많이 성숙해졌다고 봅니다. (어르신들의) 참여 학생들은 조를 구성해 정든마을에 찾아가 어르신들의 실제 경험을 듣고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여 최종적으로 아트북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쳤다. 사실 이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어르신들과 교감하고 문제를 해결해가며 마침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시간은 학생들에게 단순한 수업 이상의 의미를 남기기 충분했다. 참여한 어르신들 역시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책도 간직할 수 있었다.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상황이 상대화되기 때문이죠. 사실 현재 고단한 생활을 하는 학생들이 어르신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현재의 자신은 괜찮은 환경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용기를 얻게 됩니다. 한 1학년 학생도 처음에는 수업 참여를 힘들어했는데,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을 들으며 용기를 내어 마지막까지 잘 해내는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안혜리 교수: 학생들이 그림책의 이미지를 전반적으로 다들 잘 그려줬지만, 특정 시대에 사용되던 사물에 대한 적합한 이미지를 선별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에는 보기 힘든 시루(그릇) 등의 이야기가 나올 때가 그랬죠.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를 하나하나 찾아가며 알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Q. 구술사와 미술의 융합 수업이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영미 교수: 이 수업은 구술자의 말뿐만 아니라 정서를 담아서 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구술은 미술의 소재가 되며 미술은 또 구술을 원활하게 합니다. 구술을 듣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미술활동을 하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잊혀진 과거의 기억들이 되살아나서 또 추가 구술이 진행됩니다. 이렇게 우리 수업에서 구술과 미술은 서로에게 생명력을 주어 과거를 생동감 있고 풍부하게 재현하게 됩니다.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융합의 힘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혜리 교수: 학과 간 융합을 ‘연결’이라는 단어로 풀어보면, 전공 간의 지식이 연결되고,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고, 이러한 만남은 또 다른 무엇인가로 연결이 됩니다. 우리는 어르신들의 삶을 과거의 한 사건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분들께는 실제 경험으로 각인된 것으로서 현재에 연결된 과정인데요. 이번 수업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이를 깨달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Q. 생애사 아트북이 만드는 가치란 무엇일까요?
김영미 교수: 이 책을 누가 읽게 될까요. 특히 자식들이 열심히 읽지 않을까요. 손자 손녀들도요. 과거에는 족보를 통해 가족문화가 전승되었지만 현재는 그 기능이 상실된 대신 이러한 책을 남기는 것이 하나의 가족문화로 바뀌게 되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안혜리 교수: 어르신들의 삶의 이야기가 세상에 하나뿐인 책에 담겨 있는 것인데요. 이분들 개인에게는 물론 공동체 측면에서도 큰 가치가 있다고 보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개인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이기도 하고요. 삶의 실제적인 증언을 통하여 그간 우리가 몰랐던 공동체의 살아있는 역사를 새롭게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됩니다.
생애사 아트북 만들기 수업은 안혜리 교수의 지도를 받던 미술교육전공 대학원생이 실행한 노인 미술교육 사례에서 기본 골격을 갖고 왔다. 미술교육에서 그림책 만들기 프로그램으로 이어졌고 이는 마을 책 읽어주기 활동으로 연결된 것이다.
안혜리 교수: 노인 미술교육에 관심이 있었던 제 논문지도 학생이 정릉사회복지관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인생 이야기 그림책 만들기’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행했는데, 책을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고 어르신들이 마을 도서관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자신의 책을 읽어줌으로써 ‘세대 간 통합’을 시도하는 활동도 진행했어요. 이 내용이 김송희의 ‘생애사를 접목한 노인 미술교육 프로그램 사례연구’라는 논문으로 완성됐죠.
한편, 수업 장소인 정든마을은 역사적으로는 물론 지역 공동체적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역사가 오래되었고 동시에 변화가 적어 낙후된 면이 존재하지만, 그만큼의 전통적인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김영미 교수: 정든마을은 아프고 힘든 역사를 보내서인지 공동체가 강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하죠. 사실 도시재생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는데요. 도시재생이 건물을 부수고 좋은 건물을 짓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공간에 대한 추억을 발굴하고 이를 서로 나누면서 어떠한 문화적인 동질감과 공동체성을 공고히 하는 그런 개념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