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기획특집

[FF Magazine] 평론가 김미정이 만난 시인 신용목


지금의 홍대 근처는 과거 문인들에게 있어서의 명동이나 인사동 혹은 대학로와 같은 공간일 것이다. 단지 ‘젊음의 공간, 문화예술의 공간, 출판사들이 밀집해 있는 곳’ 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곳, 그리고 그 설명하기 어려운 무엇으로 인해 지금 2010년의 젊은 작가들을 종종 매혹시키는 곳. 부대끼는 삶의 활력과 보들레르가 본 도시의 우울이 뒤섞여 있는 곳.
창밖에는 살짝 흩뿌리는 비와 우산들. 실내는 드문드문 비어 있는 자리와, 약간 경쾌한 스윙리듬의 음악. 그리고 커피와 맥주 사이에서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두 사람. 어느 5월 홍대부근 커피집의 저녁 풍경. 그렇게 시를 쓰는 신용목과 평론을 쓰고 있는 김미정이 만났다.
물론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이는 아니다. 잠시 의기투합했던 시절에 대해 덧붙일 필요가 있겠는데, 신용목 그리고 나(김미정)는 2007년부터 2008년 사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웹진 <문장(www.webzine.munjang.or.kr)>의 편집위원으로 함께 활동한 일이 있다.
웹진 일을 그만 둔 후 나는 도쿄로 유학을 떠났고, 올해 4월에 다시 돌아왔다. 대략 2년간 우리는 만난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렇게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관계로 2년 만에 해후했다.
시인 신용목은 1974년 태어나 2000년 『작가세계』로 등단했다. 그간 두 권의 시집(『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문지, 2004/ 『바람의 백만 번째 어금니』, 창비, 2007)을 냈고, 육사시문학상, 시작문학상 등을 받은 자칭·타칭 ‘중견’시인이시며, 현재는 세 번째 시집을 준비 중이다. 2년 만에 만나 보니 신용목은 ‘시인 신용목’, ‘선생님 신용목’, ‘학생 신용목’ 으로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시인 신용목일 뿐 아니라, 대학이나 기관에서 시 강의를 하는 선생님 신용목이기도 하고,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학생 신용목이기도 하다.
독자들의 이해를 위한 프롤로그, 사족이 길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순간 스침. 오늘은 인터뷰하는 평론가와 인터뷰당하는 시인의 만남이 컨셉이지만, 우리 두 사람에게는 2년만의 해후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인간 신용목과 인간 김미정의 만남이기도 하므로, 격의 없는 인터뷰의 모범을 보이자는 것에는 대략 합의!
김미정 (이하 김) : 지난 2년간 시인, 선생님, 학생. 1인3역이었죠? 어땠어요?
신용목 (이하 신) : 정신없었죠. (웃음)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이 그냥 굴러다닌 느낌이었어요. 얼마나 하는 것 없어 보였으면 백가흠 소설가(일산이 집인 신용목의 이웃사촌이기도 하고, 2007년 창비에서『조대리의 트렁크』가 나왔다)가 택시 안에서 내 손을 잡고는 “용목아, 그렇게 좀 살지마아.” 하더라고요. 아무 사건도 없이 시간이 간 것 같아요. 미정 씨는 어땠어요?
김 : 저는 일본에서 돌아온 지 이제 막 두 달째여서 여러모로 재적응기이기도 하고, 들어오자마자 복간예정인 문학잡지 편집위원 일을 하게 돼서 좀 경황이 없어요. 다시 감(感)을 잡고 뒤쫓아 보려고 노력중이랄까. 거의 재사회화 중이에요. 앞으로 좀 지도편달 많이 부탁드려요.
신 : 미정 씨는 정말 하나도 안 변한 것 같아요. 나는 늙었는데, 일본에서 좋은 일이 많았던 거 아닌가요? 일본 생활 얘기 좀 해주세요.
김 : 일본에는 논문 때문에 갔지만, 도서관 고서실보다 정기간행물실을 훨씬 자주 간 것 같아요. 그렇다고 문학 잡지만 본 건 아니고, 두루두루 가리지 않고 본 편이고, 제가 평론을 하고 있다 보니 주로 그곳 평론 분위기에 좀 관심을 두었어요. 물론 그곳은 ‘문학평론’이라는 장르의 엄밀성이 거의 희미해진 상황이긴 하지만 일본 분위기를 통해서 이곳을 거울처럼 비춰보거나 비교하던 일들이 의미 있었던 것 같아요. 문학의 국경이라든지, 한국어 같이, 내가 서 있던 지평을 상대화해보는 경험을 했던 게 가장 큰 소득이었다는 생각이 들고요.
김 : 저는 근2년 한국에서 떠나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곳 분위기, 한국문학 분위기에 대해 용목 형이 생생하게 얘기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어떤가요?
신 :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문학적 담론으로만 볼 때는 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때의 논의들이 조금 정리되거나 아니면 피로하게 이어지고 있는 셈이죠. 다만, 아무래도 이 정권이 본격적으로 자기 구색을 갖추려고 하는 데서 많은 문제들이 생겨난 것 같아요. 발자크였나요? 가장 불행한 일은 똑같은 사람끼리 사는 거라고 말한 사람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정권은 특정인을 표본으로 한 복제인간들만 원하는 것 같아요. 생각이 다르거나 행동을 달리하면 바로 격리시키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도 했으니. 음, 말 다했죠, 뭐.
김 : 앗. 역시 에둘러가지 않으시는군요. 하긴 일본에 있을 때도 한국이나 한국문학 분위기에 대해서 일본친구들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주곤 할 정도였어요. 옛날 얘기인 줄 알았던 시국선언도 다시 이어졌죠. 일본 친구들과 한국 분위기, 정치와 문학 이야기를 주고받은 일이 있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한국이라는 곳은 확실히 ‘여러 개의 시간들이 묘하게 착종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작년 6월쯤 한 일본 선생님과도 이야기 나눈 일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시국선언’이라는 것이 2000년대에 바로 옆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참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정치적인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도 그랬지만, 지식인이나 문인이라는 존재가 여전히 어떤 상징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그랬어요. 일본은 지식인들, 문인들의 사회적, 상징적 발언권이 추락한지 오래됐다고 봐도 되거든요.
신 : 나는 개인적으로 옆에 있는 사람을 개 패듯이 패는 사람보다, 나쁜 놈 찍어주는 사람이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옆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은 주변사람만 괴롭히는 것이지만 정치는 모든 사람을 괴롭히는 거니까요.
음, 최근 세계 금융위기 때, 한국이 가장 빨리 위기를 극복할 것이다, 또는 가장 빨리 극복했다는 말이 떠돌 때마다 나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어요. 경제 지표란 건 결국 기업 지표고 자본 지표인데, 그것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구조 조정이 필연적이죠. 한국이 가장 빨리 그것을 극복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노동자들이 일터를 잃었다는 것이고. 그만큼 많은 예산이 시장으로 쏠렸다는 얘기가 되니까요. 실제로 복지 예산 등이 절반으로 삭감되었다는 지표들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그런 정치적 상황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경사를 지니고 굴러가고 있으니, 그 모든 상황들을 몸으로 체화하고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글을 쓴다는 게 사실 불가능한 시기가 아닌가요.
아무튼 글쓰기에서도 정치적 영향과 상황이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그때 시국선언을 했던 것은 사실 문사적 역할이라든가, 지식인으로서의 대중 제도적 측면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은 이제 시민 사회에서 훌륭히 하고 있죠. 그냥 일종의 시민성에서 발현한 작가적 양심 정도, 아니면 문학적 비명 정도라고 해두는 게 어울리지 않을까요? (웃음) 잘 모르겠네요.
김 : 동감이에요. 일단 한줄선언, 시국선언이 글 쓰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이 맞긴 하지만, 지금 스스로들이 체감하는 상황 속에서 자발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던 각자의 목소리였던 셈이니까. 조직된 기억도 경험도 없는 젊은 작가들까지도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할 만큼의 분위기였다는 거니까.
말이 나온 김에 ‘시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 조금만 더 부탁할게요. 2009년 한국문학에서 내내 ‘문학과 정치’가 테마였다고들 하던데.
신 : 저는 시나 문학이라는게 전략을 갖고 시작되는 순간 문제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몸으로 녹아있는 상황에서 자연스레 나올 때 비로소 문학이라는 장르로 탄생되는 것이 아닌가. 어떤 거창한 이론들도 일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내 몸이 되었을 때,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것이기도 하겠죠.
가령 우리에게 이 세계는 어떤 이념이나 제도 규율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느끼고 만져지고 감촉되는 것이잖아요. 그 모든 걸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좀 구체적 의미에서 문학이 일상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정권하에서는 그것이 좀 불가능한 것 같아요. 몸으로 일상을 누리기 전에 법과 제도와 규율이 난무하고, 상식 이전의 강요가 지배하니까. 또 그것이 어떤 논리나 단계를 통해 쏟아지기보다 무식하게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니까. 정말 완벽하게 스스로를 문학적 인간으로 돌려세울 수 없는 이상, 음, 정말 활자만이 아니라 삶과 운명까지도 문학주의자로 전환하지 않는 이상, 요동치는 세계 속에서 반응하는 인간으로 살면서 문학을 하는 건 힘든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에 아침에 신문만 받아보면 온갖 분노가 생성되니깐, 이걸 뭐 체화할 여력이 없어요.
김 : 그러고 보니 최근에 용목형이 모 신문에서 쓰신 칼럼 생각이 나네요. 개인적으로 시 쓰기가 어땠는지도 좀….
신 : 못 쓰고 있죠. (웃음) 2년 전에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것 같아 좀 쑥스럽지만, 여전히 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아요. 체질적으로 최근의 주요 문학적 담론에 쉽게 편승하지도 못하고, 또 그렇다고 내가 그동안 이렇게나마 해왔던 것에 안주하지도 못하니까 갈팡질팡 할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그동안 쓴 시들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버릴 것도 많고 손볼 것도 많고. 세 번째 시집도 좀 천천히 낼 생각이에요.
김 : 그러면 지난 이년간 썩 만족스러운 시는 별로 없으셨다는 건가요?
신 : 네. 공부도 못하고, 잘 가르치지도 못하고. 술만 마셨어요. 이거 정권이 책임져야 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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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정 (이하 김) : 우리가 다른 글쓰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다를 텐데. 그거 한번 솔직하게 말해보는 건 어떨까요? 시인으로서 평론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령, 평론가에 대한 평소의 불만이랄까. 평론가들이 너무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만요.(웃음)
신용목 (이하 신) : 상처 줄 거예요. (웃음) 최근 평론을 봐도 그렇지만 평론이란 게 당시 유행하는 이론과 결부되어 진행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평론을 문학적 유행과 관련시키고 그것에 따라 다루어지는 작품들이 결정되는 것 같아요. 음, 그런데 시 잘 쓰는 친구들 중에도 거기에 부합하기 위해서 자기의 시적 욕망을 전화시키는 부류가 있어요. 시인들에게도 자기 작품이 문제작이 되고, 그렇게 해서 출세하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면 다행인데,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렇게 하다 실패를 하고 방황해요. 그게 문제인 것 같아요.
김 : 그렇군요. 글쓰기라는 게 ‘잠재적 독자를 누구로 삼을 것이냐’일 텐데, 주로 갓 등단한 사람들에게는 그게 일반 독자이기 이전에 어떤 권위일 경우가 많겠죠. 일단은 자기 글을 공적으로 다뤄줄 수 있는 사람에게 어필해야 하는 게 맞으니까. 그런데 평론가에 대한 불평에 동료에 대한 불만도 많이 섞여있네요 (웃음)
지금 하신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평론가들이 너무 어려운 얘기 갖고 딴 이야기를 많이 하고 정작 작품은 제대로 보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작가(시인)들이 그런 신통찮은 평론가들 얘기에 너무 휘둘린다, 그 얘기시군요? (웃음)
그런데 이 얘기가 평론가들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를테면 평론이라는 장르 자체가 ‘판단’이나 ‘해석’이 불가피한, 그러니까 ‘입장’이 핵심인 장르다보니까 종종 이론이라든가 작품 바깥의 무언가를 끌고 올 수밖에 없고 그러면서 종종 글이 어려워지기도 하고…. 그 균형 잡기가 참 힘들거든요. 평론가들에게는 이런 딜레마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게 또 서로에게는 딜레마일 수밖에 없을 것 같고요.
신 : 그 딜레마와 딜레마가 엮이면서 악순환이 거듭되는 거겠죠?
김 : 생각해보면 작가-평론가 사이에는 늘 공모관계가 있었고, 동시에 그에 대한 불평불만도 역사적으로 늘 존재해왔던 것 같아요.
신 : 음, 근데 평론가의 입장에서 볼 때, 순수하게 독자로서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이 있고, 문학사적으로 의미 있다고 하는 작품이 있을 테고, 평론가로서 무언가 문제적 지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표명할 수 있는 작품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세 개의 간극 중에서 결국 평론가들은 자기가 새로운 담론을 생성할 수 있고 새로운 의미를 추출해내는 작품에 대해 거론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것을 자기가 공부한 것 가운데 부합하는 지점을 찾아 포착할 수밖에 없는 거고. 그게 지나치게 일방향적으로 진행되면서 이론에 부합한 작품을 찾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 작품들도 이론을 따라가는 쏠림 현상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러면서 서로가 너무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김 : 마이크 꽂아 드려도 될 듯한데(웃음). 그 부분 좀 더 이야기 해보죠. 이론을 작품 읽기에 적용하는 것에 무척 회의적이 되신 것 같아요. 어떠세요?
신 : 이론을 가지고 보는 것에 회의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 시가 특정 이론에 부합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시 해석을 끝내는 것. 그리고 특정 이론을 염두하고 그것의 변형으로서 시를 창작하는 것. 이런 것들이 우리 시대의 딜레마이자 문제점이지 않을까 한다는 거죠. 갑자기 급소심해지네. (웃음)
음, 그런 것도 있어요. 일종의 이론 추수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어떤 평론을 읽어보면, 요즘 시의 가진 두드러진 특성이 음악성이라고 말하는데요. 그 음악성을 어디서 찾느냐 하면 문맥상 시적 의미를 산출하기 힘든 경우에 주로 그 가치를 음악성으로 전환시켜 이야기해요. 그런데, 문제는 그 음악성이 마치 화자의 내면을 무대화시켜서 그 내적 균열을 일으키는 상태, 음, 일종의 의미를 산개시킴으로써만 음악성이 성립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향이에요.
음악성은 시의 고유한 자질이죠. 그것이 문맥의 의미를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그동안의 모든 시들을 통해 증명되는 거잖아요.
김 : 몇 년 전에 있었던 미래파 논쟁 얘기도 ‘미래파’에 속하지 않은 시인 입장에서 어땠는지 좀 듣고 싶네요. 이걸 ‘낯섦, 새로움, 젊음’에 대한 입장의 문제로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하는데요.
잠깐만 제 얘기를 하자면, 일본 생활에서 제일 행복했던 일 중에 매일 산책하던 일이 있었는데요. 그러니까 집 근처를 천천히 걸으면서 고양이들, 오리, 까마귀, 나무, 풀, 하늘, 별, 심지어 천성산에만 사는 줄 알았던 도롱뇽, 이런 애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눴던 일.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낯섦, 새로움, 젊음’ 이런 게 어쩌면 그동안 내 생각의 매트릭스였을지도 모르겠다는 것. 그러니까, 끊임없는 차이를 생산해 내면서만 유지될 수 있는 게 자본주의고, 그 자본주의 시장 내에서 상품으로서 유지되어야 하는 문학이 지금의 근대문학의 태생적 운명이 아닐까. 그리고 그 문학 시스템 내에 있는 사람들은 시인이건 소설가건 평론가건 끊임없이 피로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겠다. 그런데 끊임없이 어떤 차이들을 생산/발견해야만 주목받는 시스템 속에 있는 우리는 모두가 피로할거다. 이런 생각?
신 :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왜 진부하다고 하면 욕이 되었잖아요. 신파라고 해도 욕이고. 근데 나는 왜 그렇게 진부한 걸 싫어하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우리 삶이 진부한데. 그 새로움에 대한 강박이 자꾸 세계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세계는 전략에 의해 구성되고 모의에 의해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고 느껴지는 모양과 빛깔과 냄새로 구성된 세계인데 그것들을 고의로 비틀고 있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거든요.
물론, 정말 자기 안에 들끓는 어떤 열망이나 갈망이 그것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비틀림은 중요하고 또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강박의 작용에 의해 고의로 생성되는 비틀림, 그 부자연스러움이란 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 왜곡 때문에 시나 문학을 정직하게 읽어내기보다는 점점 다른 차원의 의미로 돌려세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결국 쉬운 언어를 통해 심연을 구축했던 많은 시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불러오는 거겠죠. 그동안의 많은 시들도 최선을 다해 한 수 한 수를 놓은 거겠죠. 오히려 그 바둑판의 사각을 세모로 바꾸었거나 바둑돌의 색깔이 달라서 낯설 뿐이라고 비유하는 게 더 맞을 테고, 문제는 그것이 정말 우리가 ‘바둑’이라 일컬으며 오랜 세월 지적 유희로 활용했던 행위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냐를 물어야 되는 게 아닐까 해요. 내가 뭔 말을 하고 있죠? 술에 취했나 봐요. (여기서 현재 상황을 설명하자면, 우리는 메뉴는 커피에서 맥주로 바뀌어 있었다)
김 : 아니 어제 술이 덜 깬 것 아니시고요?
신 : 그럴지도 모르겠네. (웃음) 그런데 취조하고 있는 미정 씨 얘기도 좀 들어 보고 싶은데요.
김 : 제 얘기까지 나오면 업계 비밀이 너무 많이 공개될 것 같고요. (웃음) 그냥 개인적으로 앞으로의 글쓰기는 주문 생산으로 하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청탁을 하고, 청탁을 받는 시스템에서 좀 자유로워져야겠다. 이런 생각해요. 욕심내지 말고 정말 쓰고 싶은 것만 쓰자. (근대)문학이 애초부터 시장의 산물이고 시장 내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건 맞는데, 그렇다고 거기에 순응(투항)해버리지 말고, 그렇다고 우리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단순하게 이분법식 맹목적 반대 논리는 펴지 말자. 바깥을 상상하려면 훨씬 치밀하고 두 번 세 번 꼬는 논리나 방법론이 필요하겠다. 이런 생각을 해요.
아무튼 내가 읽고 써서 즐거울 수 있게 살자. 내가 가장 즐겁게 잘할 수 있은 것을 쓰자, 하자. 이런 생각.
신 : 나도요. 나도 그냥 내 생긴 대로 쓰려고요. (웃음)
김 : 지금까지 생긴 대로 써서 충분히 훌륭하셨죠~
신 : 앗, 거기까지~!
신 : 우리 제목 이렇게 뽑아요.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어요.
김 : 정말? 그러려면 썰을 더 풀어주셔야되요. 지금까지 얘기로는 빈약해서요.
신 : 난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부조리한 세상과 상관없이 살겠다고 떨어져 나와서 혼자 무관한 척 사는 것이 결과적으로 세상이 더 악화되도록 도와주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반대로 원칙만 지키겠다고 이야기하면서 현실적으로 동원 가능한 어떤 노력에 대해 냉소하면서 혼자 고귀한 척 말하는 것도 세상이 악화되도록 도와주는 거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어요. 이건 딴 얘기지만 그동안 나는 선거철마다 적어도 내 한 표에 대해서만은 성공하는 투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실패하지 않는 투표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근데 우리의 바람과 기대는 늘 저버려질 수밖에 없겠고. 그럴 바엔 정말 저 무자비한 사람들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다가 그냥 확, 세상이 망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한동안 침묵)
신 : 왜 조용해요? 또 논리적으로 정리, 생각하려고 하는 거죠?
김 : 실은 저도 알콜 기온이 올라와서 직독직해가 잘 안 되는 중이에요. (웃음)
좀 전에 잠깐 생각난 게 있는데. 제가 2008년 5월1일에 대학로에 있었고, 작년 2009년 5월1일에는 시부야에 있었어요. 5월1일은 어떤 정치적 상징성을 갖고 있는 날이기도 하잖아요? 대학로나 시부야나 양쪽 모두 그런 의미를 갖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고. 그런데 두 곳의 분위기는, 당연하겠지만 매우매우 달라요. 그건 2008년의 저와 2009년의 저의 차이이기도 하겠고, 2008년의 한국과 2009년의 일본 사이의 차이이기도 하겠죠.
한편으로는 이 두 개의 시공간이 저에겐 같은 경험이기도 했어요. 그 두 개의 다름과 같음에서 동일하게 느꼈던 어떤 가능성과 활력의 체험이 자주 생각나요. 지금 세상이 망해버려도, 망하지 않아도 뭐 상관은 없겠는데요. 아니지 상관이 없지는 않겠지만요. (웃음) 아무튼 사람과 세계에 대해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냉소라든지 니힐리즘 속으로 무기력하게 추락해 버리지는 않으려고 참 노력중인 것 같아요.
신 : 아, 그러면 아직 세상이 망하면 안 되는 거겠네요? (웃음) 그럼 제목을, ‘좀 더 있다가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어요’로 해야 하나?
김 :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마음 한 켠에선 그런게 꿈틀꿈틀하는 것 같긴 해요. 듀나의 어떤 소설들을 좋아하는데 주로, 위악적이고 거침없이 세계를 리셋(reset) 시켜버리는 소설들을. 그런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비약해 버린 것 같아요. 세 번째 시집 미리 홍보 좀 해주세요.
신 : 제목만 정해놨어요. ‘아무 날의 도시’. 두 번째 시집 때도 제목만 정해놨던 것 같아요
김 : 이젠 도시로 진입하셨군요. 전략인가요?
신 : 전략이라기보다는 내가 시골생활에서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던 탓이겠고, 작년에 음주로 운전면허 취소당하면서 지하철이라는 문물과 아주 친근하게 부대끼다 보니 이 도시가 좀 끔찍한 느낌도 들고 이 도시 속의 일상이 이제야 비로소 좀 내 몸 구석구석에, 왜 인이 박힌다고 그러잖아요? 그렇게 몸에 박히는 것 같아요.
김 : 아, 대략 세 번째 시집 분위기를 알 것 같아요. 신용목의 도시시(詩)라니. 매우 기대되는데요!
신 : 너무 '마무리 멘트'스러운걸요?! (웃음) 취조 그만하시고 녹음기 끄고 술 마시죠?!
김 : 할 말 없어졌어요. (웃음)
인터뷰는 그저 빌미였을지도….
한때의 의기투합을 추억하며, 녹음기에 녹음되지 않은, 말 그대로의 오프더레코드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다시 커피집, 아니 술집 앞에 서 있다. 다시 우산을 써야할지 말아야할지 망설이게 하는 하늘. ‘환하게 어둠을 켠’(「아무 날의 도시」) 거리. 그리고 각자 다시 어디론가 발걸음을 떼어야 하는 시간.
그것은 2010년 5월말, 어떤 종류의 어둠이 남루하게 빛을 내지만, 그 뒤켠 어딘가에, 아직 쓰여지지 않고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환함을 숨기고 있는 아무 날의 도시, 아무 날의 이야기….
글 / 임유미 (FF)

* BW_문학평론가이자 동료로서 시인 신용목과 오랜만에 만난 사회적이면도 사적인 대화를 'between'을 통해 엿볼 수 있게 해준 김미정은
1975년생. 2004년 『문학동네』에서 「‘탈(脫)’의 상상력과 쓰기의 존재론」으로 등단했다. 「‘버려야만 적합한 것이 되는 것’의 윤리」외 평론 다수. 2006년에 평론집을 내라는 기금을 받았으나 책을 내는 일은 조금 더 늦어져도 된다고 생각하고 여유만만 중. 그때그때 달라지기는 하지만, 근 1-2년 사이 ‘여럿이면서 하나인’ 혹은 ‘나이면서 우리인’ 것들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조만간 제대로 된 세대론 한 편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