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 50년째 인공눈 연명, 벼랑끝 동계올림픽 … "변해야 산다" / 박주희(아시아올림픽거버넌스·정책전공)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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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덮쳤다 … 흔들리는 동계올림픽의 미래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개막 직전 이탈리아 알프스 지역에 폭설이 쏟아지자 현지 조직위원회와 국제 스포츠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알파인 스키,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 등 주요 설상(雪上) 경기가 열릴 경기장이 위치한 보르미오와 안테르셀바 일대에 눈이 쌓이면서 대회 초반 운영에 대한 우려가 일단락됐기 때문이다. 이들 지역에는 대회 개막 직전까지 눈이 내리지 않아 각 경기 단체는 물론 현지 조직위원회 관계자들도 가슴 졸이는 시간을 보냈다. 인공눈을 만든다 해도 적절한 자연설이 섞여야 선수들의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고 부상 위험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도감 뒤에는 쓸쓸한 현실이 숨어 있다. 눈이 내려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는 상황 자체가 동계올림픽이 마주한 구조적 위기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폐막한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은 단순한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흔들리는 동계올림픽의 미래를 보여준 대회였다.
두 도시 이름을 내건 첫 동계올림픽
이번 대회에서 가장 주목할 변화는 동계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두 도시의 이름이 공식 대회명에 나란히 들어갔다는 점이다.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처음 열린 동계올림픽은 그동안 단일 개최 도시 한 곳만 내세워 대회명에 반영했다. 올림픽 헌장이 원칙적으로 개최 도시를 중심으로 대회를 운영하도록 규정해온 것도 이러한 관행의 배경이었다.
다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 어젠다 2020' 개혁 이후 2019년 개최지 선정 방식을 유연하게 바꾸면서 복수 도시·지역 개최도 가능해졌다.
물론 기후 조건 등 상황에 따라 여러 도시에서 개최한 적은 있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경우에도 스키와 썰매 종목이 강원도 평창에서,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등 빙상 종목은 강릉에서 치러졌다.
그러나 이번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은 이 같은 분산 개최를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기존 동계올림픽 대회와 크게 달랐다. 주 개최지인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를 중심으로 보르미오, 리비뇨, 발디피엠메 등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전역이 개최지로 참여했다. 선수와 올림픽 관계자들이 지냈던 선수촌 역시 여러 지역에서 분산돼 운영됐다.
IOC는 이를 두고 '새로운 형태의 동계올림픽'이라고 불렀다. 새 시설을 짓는 대신 기존 경기장을 여러 도시가 나눠 쓰는 분산 개최 방식을 택한 것이다. 실제로 이번 대회는 전체 경기장의 약 93%를 기존 또는 임시 시설로 충당했다. 이는 IOC의 개혁 정책인 '올림픽 어젠다 2020+5'가 강조하는 지속 가능성과 레거시 중심 전략을 충실히 이행한 사례로 기록됐다. 올림픽의 고유성, 지속성 강화가 핵심인 '올림픽 어젠다 2020+5'는 기존에 올림픽을 치르고 나서 각종 유무형적 후유증을 극복하고자 토마스 바흐 전 IOC 위원장이 내세웠던 '올림픽 어젠다 2020'의 후속 개혁안이다.
대회 현장에서의 반응은 엇갈렸다. 경기장이 넓게 흩어져 선수단과 취재진의 이동 부담이 컸다. 일부 지역은 도로 사정, 교통 수단 부족 등으로 이동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한 도시에 집중해 개최할 때 느낄 수 있는 축제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부 종목 선수들은 "동계올림픽이 아니라 일반 세계선수권, 각 종목 월드컵 대회를 치르는 것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천문학적인 개최 비용 문제로 올림픽 유치 희망 도시가 줄어드는 작금의 현실에서, 이러한 분산 개최는 올림픽의 명맥을 잇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동계올림픽이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위협은 기후 변화다. 눈 없는 동계올림픽은 상상할 수 없다. 올림픽 헌장 제6조 2항에도 '동계올림픽은 눈 또는 얼음에서 행해지는 경기만 동계 종목으로 인정된다'고 명시됐다. 그러나 점차 눈이 사라지는 현실에 동계올림픽도 근본적인 대책 마련과 대응이 필요해졌다.
동계올림픽에서의 눈 부족 사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0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때 처음 도입된 인공눈에 대한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는 트럭과 헬기로 눈을 실어 날랐고, 2014년 소치 대회는 녹아내리는 눈 탓에 부상자가 속출했다. 2022년 베이징 대회는 올림픽 사상 최초로 100% 인공눈에 의존해 치러졌다. 인공눈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물만 약 4900만갤런(1억8549만ℓ)에 이르렀는데, 이는 하루에 약 1억명이 식수로 쓰는 양으로 알려졌다. 인공눈을 만드는 과정에서 막대한 물과 전력을 소모하는 만큼 환경 파괴가 함께 문제로 거론됐다. 제설기를 이용해 만드는 인공눈은 자연 눈보다 입자가 작으면서도 밀도가 높아 단단한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선수들의 부상 위험을 높인다는 약점도 있다.
기후 문제에 따른 동계올림픽 대회의 위기는 실제 예측 데이터로도 입증됐다. 캐나다 워털루대 연구팀이 2024년 국제 학술지 '커런트 이슈 인 투어리즘(Current Issues in Tourism)'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과거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설상 종목을 개최했던 전 세계 93개 도시·지역을 분석한 결과 중간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에서 기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개최지는 2050년대 52곳, 2080년대 46곳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기온 상승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 동계패럴림픽의 경우 2050년대 22곳, 2080년대 단 16곳만이 안정적인 개최가 가능할 것으로 나타났다.
인류를 위협하는 기후 변화는 동계올림픽의 생존 자체에도 큰 위협을 가하고 있다. 점점 좁아지는 은빛 설원 속에서 IOC와 국제스키·스노보드연맹(FIS) 등 설상 종목 관련 단체들은 생존을 위한 다각도의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자연 눈 의존도가 높은 종목의 코스를 단축하거나 실내 시설 활용을 늘리는 '기후 적응형 종목 개편'이 거론되고 있다. 또 물과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친환경 인공 제설 기술' 도입도 아이디어로 떠올랐다.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처럼 기후 조건이 맞는 여러 지역이 종목을 나눠 여는 '분산 개최 모델의 표준화'는 이번 대회가 끝난 뒤 평가·검토 과정을 거쳐서 향후 좀 더 심도 있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동계올림픽 막바지에 나온 동계올림픽 일정을 기존 2월에서 1월로 앞당겨 치르는 방안도 동계올림픽의 지속성에 대한 고민 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기술과 스포츠의 결합이 바꾼 올림픽 기후 문제 외에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은 여러 면에서 스포츠계의 미래를 모색하는 거대한 실험장이었다. 기술과 스포츠의 결합이 대표적이다. 방송 중계에서부터 심판 판정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AI)과 3차원(3D) 그래픽 등 다양한 신기술이 적용돼 전 세계 스포츠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박주희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 이사장·아시아올림픽평의회 집행위원]
올림픽 주관 방송기구인 OBS는 액션캠과 드론을 활용한 다이내믹한 중계로 시청자들에게 직접 경기를 즐기는 것 같은 박진감을 선사했다. AI 기반의 실시간 데이터 그래픽 기술은 짧은 시간에 수많은 정보를 전달하면서 생소할 법한 동계 종목에 대한 흥미를 끌어올렸다. 게임을 하듯 펼쳐지는 화면과 다양한 데이터에 현장에서도 호평이 쏟아졌다.
이 같은 변화는 짧은 영상과 시각적 자극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몰입감 있는 경험을 제공하려는 생존 전략의 일환이다. 이미 올림픽 종목 구성과 관련해서도 동계올림픽은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하계올림픽이 스케이트보드, 브레이킹 등을 도입하며 젊어졌듯, 동계올림픽 역시 흥행과 다양성 확보를 위해 새로운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유승은 선수가 한국 여자 설상 종목 첫 동계올림픽 메달(동메달)을 따냈던 스노보드 빅에어는 비교적 최근인 2018년 평창 대회 때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최가온 선수가 금메달을 따냈던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역시 최근 X게임 등 다양한 포맷을 통해 전 세계 젊은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인기 스포츠로 각광받고 있다. 각 종목 경기 단체들은 이 같은 트렌드에 맞춰 다음 4년, 그 이후의 동계올림픽 운영 방안을 계획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새롭게 취임한 커스티 코번트리 IOC 위원장 체제 아래 각 종목 단체들은 팬들의 달라진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이른바 '미래에 적합한(Fit for the Future)' 스포츠 프로그램 도입을 핵심 과제로 삼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핏 포더 퓨처'는 환경 변화에 맞춰 올림픽의 미래를 설계하고 실행안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최근 IOC 집행위원에 선출된 김재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회장도 이 프로젝트에서 대회 규모, 종목 등을 검토하는 올림픽 프로그램 워킹그룹 소속으로 조정자 역할을 해왔다. 이렇게 전 세계 최대 스포츠 축제, 올림픽조차 세상의 빠른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커다란 숙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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