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재건축 계획은 퇴행적
공동체 배려 없고 탐욕만 가득
더 큰 문제는 경쟁적 모방 우려
서울 압구정 재건축이 잡음으로 시작했다. 3구역의 설계 공모 당선작이 문제라며 서울시가 설계사를 사기미수 등 살벌한 혐의로 고발했기 때문이다. 애초 정해준 용적률 한도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인데 조합 측은 문제가 없다며 완강하다. 압구정 6개 구역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입지도 최상이어서 지역 사업 향방이 달려 있고 나아가서는 서울시의 ‘신통기획’ 전체 성패를 가름할 사건이 시작된 것이다. 어찌 됐든 도시 서울은 망했다. 용적률이 300이든 350이든 망했다. 경쟁하던 다른 설계안이 당선됐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 도시 전체로는 재앙이다.
신통기획은 민간이 주도하고 공공이 지원해 재건축 사업을 신속하게 진행한다는 취지다. 오세훈 시장의 시그니처 정책이다. 주민들은 용적률이나 층수를 더 받을 수 있으니 수지가 좋아져 사업을 빠르고 이문 있게 진행할 수 있다. 서울시 입장에선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프라를 확충할 수 있고 도시환경을 개선할 수 있으니 모두가 승자가 되는 묘수처럼 받아들였다. 문제는 서울시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서부터 드러난다. 계획은 우선 단지를 녹지로 둘러싸는 것으로 시작한다. 임대주택, 단지 내 공공 보행통로, 올림픽 대로를 덮어 만든 공원, 한강 보행교 등이 공공 기여로 제시됐다. 대신 용적률은 대폭 올려주고 층수는 70층 이상으로 해 아예 규제가 없는 것과 한가지다. 소위 시장 즉 부동산과 토건 세력은 환호했다.
문제는 여럿이다. 우선, 도심에 여전히 변두리의 문법으로 아파트를 다시 짓겠다니 외려 퇴행적이다. 이 지역은 지어질 때와는 달리 서울의 도심이 됐다. 서울 중심이 강남으로 이동했고 고속도로와 올림픽대로가 만나는 지리적 여건에다 한강 변이어서 주식으로 치면 대장주라고 말하는 도심 아파트 단지다. 50년 전에는 변두리였고 당장 주거가 시급했던 시절이었다. 도시 문화적으로 후진적이던 때였다. 신통기획안 자체가 도심 주거와는 거리가 먼 아파트를 염두에 뒀다. 예를 들어 구역을 녹지로 둘러 감싸는 것은 단지를 도시의 다른 부분과 분리하겠다는 의도다. 도로, 대중교통, 한강 조망 같은 도시 인프라의 이득은 챙기면서 공동체에 대한 기여나 배려는 없다. 덮개 공원이나 한강 보행교 같은 공용시설이 있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주민들이 전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게다가 설계회사들은 임대주택이나 공공보행로 같은 시설을 우회하거나 무력화할 방안을 경쟁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니 사실상 도시 공공 기여는 없다.
층수 완화는 더 큰 문제다. 한강 남쪽에 초고층 아파트를 세워 도시 경관을 망치는 것이 일차적 문제다. 그보다 더 고약하게 탐욕적인 것은 발코니 확장과 연관이 있다. 설계사들은 3면으로 발코니가 확장할 수 있어 실질적으로는 전용면적의 1.5배 이상 효과가 있다고 선전하고 있을 정도다. 동 간 거리 등의 문제로 층수 제한이 있을 때는 불가능한 일이다. 서울시가 오랫동안 지켜 온 용적률과 한강 주변 층수 제한 체계가 동시에 무력화된다.
머지않아 압구정 단지는 대한민국 대장주 아파트답게 다시 화려하게 태어날 것이다. 학군과 교통 여건은 좋으면서도 녹지로 둘러싸인 고요하고 견고한 성채로 완성될 것이다. 수변 공원이 단지 앞마당이며 거실에서 한강을 조망할 수 있고 주차는 넉넉해질 것이다. 그 대가로 나머지 서울시민이 받는 혜택은 없고 짊어질 부담은 만만치 않다. 도로는 더 막힐 것이며 한강 변 남쪽에 둘러쳐진 70층 장벽을 보며 살아야 한다. 올림픽대로를 지날 때는 우중충한 터널에 갇혀야 한다.
정작 더 큰 문제는 여기에 자극받은 다른 아파트 단지와 재개발 주민들이 경쟁적으로 모방하고 요구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더 이상 말릴 수도 없게 된다. 이른바 ‘어반 스프롤’이 시작되는 것이다. 도시, 특히 주거가 무분별하고 무계획적으로 교외로 확장하는 서구 도시의 부정적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탐욕적이며 파멸적인 어반 스프롤이, 그것도 도심 한가운데 펼쳐지니 이제 서울은 다시 50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번 생은 망했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