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건 국민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대두되고 있는 엔화의 약세 배경에는 일본의 상대적 국력 저하가 주된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일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한때 145엔까지 추락했다.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이 145엔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1월 이후 약 8개월 만이다. 연초까지만 해도 120엔대까지 떨어졌던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3월 중순 이후 급등하기 시작하여 현재 143엔대를 횡보 중이다.
일본의 엔저 현상이 두드러진 이유는 일본은행이 자국의 내수경기 활성화를 목적으로 제로금리를 고집하며 대규모 금융 완화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본의 금융완화 정책은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아베노믹스의 금융 완화는 양적 완화의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일본 경기의 회복에는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지만 엔저 현상을 불러오는 양날의 칼이 되었고, 국제시장에서 엔화 약세가 가속화되었다. 환율은 ‘통화의 힘’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한 나라의 대표적인 ‘국력’ 지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의 국력이 떨어지면서 엔화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일본 히로시마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발표된 2023년 일본의 글로벌 국력 순위는 8위를 차지했다. 이 순위는 한국의 경제인연합회가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여러 평가 기관의 보고서를 반영해서 군사력, 경제력, 혁신능력, 경제안보, 영향력 등과 같은 5개 분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엔저와 직결된 경제안보를 가늠하는 공급망 시장 점유율(2020년)은 9.2%로 미국(50.8%)과 한국(18.4%)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배터리 생산 점유율(2021년)은 2.4%로 6위, 글로벌 AI지수(2022년)는 16위였다. 이처럼 일본의 국력 지수는 한국(6위)에게도 역전당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공업화에 성공한 국가이며,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불리 정도로 위상은 대단했다. 아직도 그렇게 믿는 일본인이 많다. 하지만 현실은 저출산·고령화의 사회 구조적 변동에 따른 장기화된 디플레와 급격한 엔저가 맞물리며 세계 경제에서 일본의 존재감이 급격히 사그라들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일본의 1인당 GDP는 2030년 무렵에는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으로 추락하며,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는 날’을 맞이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의 국력 저하를 유인하는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엔저이다. 지난해 미국 등 주요 국가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섰지만, 일본은 여전히 경기 활성화를 위해 대규모 금융 완화를 유지했고, 이는 미·일 금리 차이 확대로 이어졌다. 외환시장에 따르면, 미국의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의 개정치가 시장 예상을 웃돌면서 국내 경제는 견조하지만, 인플레이션 수습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 이에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계속할 것이라는 관측이 퍼지고 있다.
그 결과 미·일 금리차 확대를 의식하면서 엔화 매도, 달러 매수 움직임이 강해져 엔화의 가치는 지속적으로 추락하고 있다. 지난 7일 ‘미스터 엔’이라 불리는 사카기바라 에이스케(榊原英資) 전 일본 재무성 차관이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긴축 기조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일본이 초저금리 정책을 계속해서 고수하면 엔화가 현재보다 10% 이상 약세를 보일 수도 있다”고 밝히면서 “내년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이 32년 만에 최저 수준인 달러당 160엔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비록 일본이 저금리와 금융 금융 완화를 통해 내수 경제의 활성화에 힘입어 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하면서 증시의 대형주 중심의 토픽스(TOPIX) 지수는 버블 붕괴 이전인 198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지만, 미·일 금리 차가 벌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엔저의 정책 기조는 마약과도 같다. 다시 말하면 엔화 가치의 하락은 일본의 국력이 추락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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