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비 폭탄을 맞아 전 국민이 아우성이다. 코로나 끝에 조금 나아지나 싶더니 물가는 폭등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난방비가 폭등했다. 국민의 높은 원성에 화들짝 놀란 정치권은 당연하게도 저소득층과 차상위 계층을 넘어 중산층까지 난방비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두세 배 오른 난방비 폭탄을 맞아 어려운 국민을 지원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 시각에서 보면 지금의 지원이 오히려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전기요금이 계속 오를 텐데, 그것도 지원해 줘야 하지 않겠나. 집값은? 이제 무상지원은 무차별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인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가 포퓰리즘이다. 보통 대중주의 혹은 대중영합주의로 변역되는 포퓰리즘은 인민, 대중, 혹은 민중을 의미하는 라틴어 '포플루스'(populus)에서 유래한 것으로, 엘리티즘의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옥스퍼드 사전은 '보통 사람들의 요구와 바램을 대변하는 것'으로 단순 정의하고 있지만, 포퓰리즘의 의미는 사용자의 의도와 시각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우리는 포퓰리즘의 개념을 논의하려는 것은 아니니, 단지 '정치세력이 일부의 이익을 국가 전체의 이익처럼 포장하여 정책화하려는 시도' 정도로 이해하기로 한다.
주기적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는 민주주의에서 유권자의 지지는 필수적이다. 정권을 획득하려는 정당은 득표전략이란 미명하에 많은 정책을 약속한다. 막대한 예산이 들겠지만 그게 어디 내 돈인가. 세금으로 충당하면 될 일이고, 모자라면 국채를 발행해 다음 세대로 떠넘기면 된다. 예산 좀 아끼겠다고 반대하다가 자칫 최종 목적인 권력을 잡지 못할 수 있다. 빚이 쌓여도 당장 무슨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다음 정권을 맡아서 할 사람들이 걱정할 일인데 뭐가 문젠가. 이런 단순 논리에 선거를 거듭할수록 포퓰리즘적 공약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역대 정권은 재정건전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무역의존도가 GDP의 100%에 근접하고 IMF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나라는 국가신용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재정준칙을 만들어 어떻게든 국가부채비율이 GDP 대비 40%를 넘지 않도록 관리해 왔었다.
이 원칙을 처음 깨뜨린 것이 문재인 정부다. 무슨 대책이라도 가지고 그런가 했더니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는 인식부터 달랐다. 우리는 부자 나라고 '국가재정'이라는 곳간에는 돈이 쌓여 있다고 믿었다. 하긴 그들의 인식으로는 세금이 부족하면 부자들에게 증세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집은 한 채면 충분하고 두 채 이상 가진 사람은 마치 죄인처럼 취급했다.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은 없게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건강보험의 혜택을 과감히 늘렸다. 감동적이긴 하지만 과연 그런 건강보험 재정이 얼마나 계속될 수 있을까?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없는 세상도 마찬가지였다. 비용이나 부작용을 어떻게 감당할까 고민한 흔적도 없다. 이상적이지만 현실에서의 지속가능성은 없는 포퓰리즘 정책의 전형이었다.
뜻하지 않게 코로나19로 세계적 감염병 사태가 터졌다. 방역을 위한 재정지출은 물론이고 이어진 영업제한으로 고통을 받았던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은 불가피했다. 누가 정권을 맡았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고 치자. 그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가릴 것 없이 많은 지원금을 난발했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국민에게는 단비로 느껴졌다. 그러면서 정부가 주는 지원금에 우리 모두 스며들 듯 물들어 갔고 국가부채는 1000조원을 훌쩍 넘었다.
난방비 지원이 포퓰리즘적 정책이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개별 정책의 성격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포퓰리즘적 정책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은 그 정책들이 결코 공짜가 아닌데도 말이다.
꼭 필요한 소수 국민을 지원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중산층까지 넓히자는 것은 나라의 장래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결국은 국민 세금으로 메꾸거나 미래 세대들에게 빚을 떠넘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퓰리즘적 정책은 마약과 같다. 한번 시작되면 끊기는 매우 어렵다. 지금 그만두지 않으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