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정치의 실종과 국익 논리 / 장승진(정치외교학과) 교수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민주평동 해외 자문위원과의 통일대화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겨우 6개월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심리적으로 느끼는 피로감은 실제 기간에 비해 훨씬 큰 것 같다. 필자는 이러한 피로감의 원인이 최근 전개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있지 않을까 한다. 정치적 입장과 선호의 차이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각자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정치는 다양한 입장과 선호 사이에서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통분모를 찾기 위해서는 적어도 상대방의 주장이 어떠한 맥락과 논리에 의해 제시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공통분모를 찾는 것도 충분히 피로한 일인데, 애초에 서로 다른 언어로 떠들고 있으니 이제는 무기력감까지 느껴진다.


얼마 전에는 온 국민을 의미 없는 듣기평가에 몰아넣고는, 많은 이들이 제출한 답안을 가짜뉴스로 치부했다. 그 답안이 가짜뉴스라면 대신 진짜뉴스가 있어야 할 텐데, 출제자는 정답지를 공개할 생각이 없다. 더구나 어떤 언론사는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는 이유로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동행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취재 제한이 아니라 편의를 제공하지 않을 뿐이라고 강변하지만, 시험장 출입을 막아놓고 응시 자격을 박탈한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제는 대통령의 뒤통수에 대고 큰 소리로 질문했다는 이유로 언론과의 소통창구 자체를 없애버렸다. 이것도 없으면 대체 무엇 때문에 큰 비용과 혼란을 감수하고 청와대를 나온 건지 궁금하지만, 역시 누구도 속 시원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거대한 부조리극은 모든 것이 국익을 위해서라는 대통령실의 설명에서 절정을 이룬다.


대통령과 그 주변에서 보여주는 언론관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지적이 있었으니 굳이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언론관 이전에 대통령실이 내세우는 국익의 의미에 대해서이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국가를 대표하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를 양분하는 정치적 입장 중 한편에 속하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국가를 위해 노력하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폄훼할 생각은 없지만, 그 진정성이 향하는 방향은 다양한 입장과 노선 중 하나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국익은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이다. 이 사실을 무시하고 내가 옳고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래서 내 선택에 대한 의문과 반대는 곧 국익을 해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진정성은 독선과 오만으로 전락할 뿐이다. 그 결과는 협치는 고사하고 정치 자체의 실종이다.


법정에서 판사가 증거에 기반하여 판결을 내리듯,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이 국익에 도움이 될지는 유권자들이 그 결과에 기반하여 판단할 것이다. 검사는 상반된 주장이 충돌하는 재판에서 한쪽을 대표할 뿐, 판결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다. 검찰청법에서 검사가 '공익의 대표자'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검사의 반대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피고의 범죄 사실이 자연스럽게 증명된다고 간주할 수는 없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을 그의 전직을 들어 설명하는 것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지독한 기시감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극의 일부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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