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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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에디 바우어 展


도시 재개발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는 건축뿐 아니라 새로운 사인(sign) 체계로도 유명하다. 방향 표지나 안내판 등을 기존과 달리 중앙에 둬 공간과 사인 체계의 통합을 이뤘다.

이를 디자인한 사람은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인 루에디 바우어(50) 씨. 그는 “공간의 맥락에 맞는 시각 언어에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 게 내 일”이라며 “정보가 공간에 녹아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대 부설 제로원디자인센터가 10월 29일까지 마련하는 ‘루에디 바우어’전은 공공 디자인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다. 특히 공공디자인 분야에서 첫걸음을 떼기 시작한 한국의 현실에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최근 내한한 그는 “23년간 작품 활동을 한자리에 모았다”며 “이런 전시는 다른 나라에서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시는 언어 미장센 진화 맥락 시간 등 10가지 테마별로 공공 디자인 관련 그래픽 작품을 모았다. 그의 작품들이 대부분 대형 공공 건물에 꾸민 것이어서 전시는 두툼한 대형 책자와 비디오로 이뤄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비디오 관람을 위한 의자를 그래픽 작품으로 꾸민 것이다. 그는 “의자마다 테마를 두어 그래픽 디자이너가 게임처럼 작품을 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독일의 쾰른 본 공항, 스위스 제네바 현대미술관, 파리의 지하철 손잡이와 국제대학기숙사, 스트라스부르대 캠퍼스 등의 그래픽 디자인을 맡았다. 이 중 가장 성공한 프로젝트로 손꼽히는 쾰른 본 공항은 비주얼이 이상적으로 통합됐다는 평을 들었다. 비행기와 트랩, 탑승구 등에 타이포 그래피와 동일한 픽토그램을 사용했다.

그가 공공 디자인 분야에서 가장 강조하는 대목은 맥락(context). 공공기관은 예산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창의력도 중요하지만 특정 맥락에서 디자인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에게 한국의 첫 인상으로 남았을 인천공항의 공공 디자인에 대해 물어 봤다.

“국제적 기준에 잘 어울리며 잠재력이 있습니다. 다만 한국의 정체성을 느낄 수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글로벌 시대의 시각 언어에는 정체성을 한눈에 보여 주는 차별화가 관건입니다. 서울이 미국과 다르지 않다면, 왜 서울에 올까요?”

그는 특히 서울에 대해 “도시에는 이름 없는 공간들이 많은데 여기에 아이덴티티를 부여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1세기는 디자인 시대다. 한국도 산업 디자인 분야에서 삼성과 LG가 세계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그는 “디자이너가 스스로 발전하지 않으면 건축 등 다른 분야의 전문가에게 지배당한다”며 “디자이너는 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밀접하게 하는 임무를 ‘권투선수’처럼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02-745-2490

허엽 기자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