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 사법참여제가 성공하려면 / 김동훈(법대학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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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04-11-05 17:45] 〈김동훈/ 국민대 법대 학장〉 9년 전 방문학자로 미국에 체류하고 있을 때 현지 여론의 관심은 온통 오 제이 심슨 사건의 재판에 쏠려 있었다. 방송에서는 증거물을 둘러싼 변호인단과 검찰 양쪽의 치열한 공방이 종일 보도됐다. 모임이나 학교 수업마다 저마다 내가 배심원이라면 유죄와 무죄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토론이 벌어지곤 했다. 이러한 모습을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사법개혁위원회는 국민 사법참여의 일환으로 2007년부터 배심제와 참심제를 혼합한 형태의 가칭 사법참여인단 제도를 도입키로 결정했다. 배심제란 주로 영·미에서 발전한 제도다. 형사재판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 12명이 유·무죄를 판단하면 법관은 양형만 판단하게 된다. 참심제는 독일 등 유럽에서 발전된 제도로 명예법관이라고도 불리는 참심원들이 직업법관과 같이 재판부를 구성해 유·무죄 및 양형을 판단한다. 사개위가 도입한 제도는 법관 3명과 사법참여인 5~9명이 재판에 참여하며 사법참여인은 유·무죄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고 양형 결정에도 참여하게 돼 있다. 일본의 재판원제도와 유사하며, 배심제와 참심제의 혼합형이라고 할 수 있다. - 폐쇄적 법원 국민소외 심화 - 배심제나 참심제의 실용성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배심제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자칫 여론재판으로 흐르기 쉽다는 비판이 항상 따르며, 그 범위가 축소되는 추세다. 참심제도 독일에서는 직업 법관의 절반 이상이 오히려 재판에 방해가 된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보인다는 조사도 있다. 하지만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들 나라에서 이러한 제도의 존재 자체가 논쟁에 부쳐진 적은 없다. 이 제도가 국민의 사법참여, 사법 민주화의 가장 핵심이라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제1조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국민주권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입법권과 행정권은 정기적 선거 절차를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얻고 있다. 하지만 사법권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사법시험이라는 단일 창구를 통해 선발된 법조엘리트로 이뤄진 법원은 관료화되고, 전문성이라는 미명 아래 폐쇄적 영역으로 둘러싸여 사법에 대한 국민의 소외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민의 재판참여제도는 사법의 민주화를 진전시킴으로써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얻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아직도 일반 국민 사이에 ‘무전유죄 유전무죄’니 하며 사법 불신이 팽배한 것은 그만큼 사법부가 일반인에게 닫혀 있는 성채(城砦)로 군림해왔다는 데에도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법부도 사법참여인제도의 도입을 사법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재판정에서 활발한 구두변론이 이뤄져 재판이 일반인에게도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 돼야 할 것이다. 또 법관들은 더 쉬운 용어와 상세한 설명으로 일반인들도 듣고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법관들도 법률가로서의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 일반인의 가치기준에 더욱 다가가는 판결을 내리게 될 것이다. 물론 제도를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데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과연 사법참여인이 공정한 법 및 시민의식을 갖고 학연·지연·혈연 등의 연고주의 사회에서 재판의 공정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할 것인가. 사법참여제도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제도라는 점은 충분히 고려됐는가. 또 사법참여인이 재판의 들러리가 아니라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여러 제도를 어떻게 확립해 나갈 것인가 등이다. - 區단위 소규모법원 설치를 - 근대사법 100년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국민의 재판참여제도는 우리 모두가 애정을 갖고 가꾸어 나가야 할 묘목이다. 이 묘목이 제대로 자라도록 사회적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사법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학교 교육에서 수시로 재판과정을 방청하고, 사법부도 국민의 관심을 높이기 위하여 적극 노력해야 한다. 최소한 광역시의 구 단위로 소규모의 법원을 설치해 법원에 대한 국민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가장 실효성 있는 대책의 하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