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시론] '문희상 案'에 거는 기대 / 이원덕(일본학과) 교수 | |||
---|---|---|---|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 바닥 모를 추락을 거듭하던 한일관계가 마침내 바닥을 찍고 반전의 기회를 맞이했다. 지난달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불과 6시간 앞둔 상황에서 한일 정부는 극적 타협을 이뤄냈다.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를 중지하고 일본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유보하는 결단을 내렸고, 일본은 수출규제를 재검토하기 위한 고위급 당국자 간 협상 개시를 발표했다. 전격 타협이 성사된 배경에 미국의 상상을 초월한 전 방위적 압박이 있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돌이켜보면 지소미아 사태의 발단을 제공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일본은 전략물자 거래의 투명성 문제를 들어 안보상 신뢰훼손을 수출규제의 이유로 들지만 실질적으로 그것이 강제징용에 대한 보복 조치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지소미아 종료 선언은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에 대한 외교적 대항 카드로 적절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미국에서 볼 때 지소미아는 단순히 한일 간 군사정보의 교환과 보호라는 기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러시아·북한에 대항하는 인도·태평양 전략 구상의 동아시아판 안보정책의 중핵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소미아는 애초부터 경제보복 문제와 맞교환할 수 있는 등가적 외교 카드는 아니었다. 어쨌든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지소미아 복귀는 현명하고도 다행스러운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다시 한일관계는 강제징용 문제로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지소미아 종료를 초래한 것이 일본의 경제보복이었다면 경제보복을 불러들인 것은 다름 아닌 강제징용 문제다.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나온 지 1년이 지났지만 한일갈등의 뇌관인 징용 문제에 대한 해법 도출은 여전히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문희상 국회의장의 이니셔티브가 주목을 받고 있다. 문 의장이 제시한 징용 해법의 요체는 국회가 입법조치를 통해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문제를 처리한다는 것이다. 문 의장이 제시한 해법은 가칭 ‘기억화해미래재단’을 설립해 한일 기업의 자발적 기부금과 양국 국민의 성금(1+1+α)으로 재원을 마련해 징용 피해자의 배상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문 의장 안에 따르면 대법원 판결에 따라 승소했거나 향후 승소할 피해자들에게 위자료가 지급된다면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이 대위변제되고 재판상의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문 의장이 주도하는 법안이 발의된다면 국회에서의 심의과정과 공청회를 거쳐 입법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문 의장 안이 참신하고도 진전된 해법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일본 기업의 기금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사법부의 판결 이행이라는 요소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이점이 존재한다. 둘째, 한국 정부가 제안했으나 즉각적으로 일본 측이 거절했던 한일 기업의 출연(1+1)에 의한 기금 구성 방안을 창의적으로 진전시켜 일본이 수용 가능한 안으로 근접시켰다. 셋째, 이제까지 여러 의원에 의해 제안된 법안들을 큰 틀에 담아 포괄적 입법안을 제시함으로써 여야 간 합의와 국민적 동의를 확보한 입법이 이뤄질 공산이 커졌다는 점이다. 물론 피해자 그룹의 흔쾌한 동의를 얻어내야 하는 마지막 고비는 여전히 난관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문 의장이 계획하는 대로 다음주 중에 이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돼 입법화 과정에 진입한다면 한중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뤄질 한일 정상회담에서 징용문제와 수출규제 문제가 동시에 해결될 수 있는 로드맵이 마련됨으로써 한일관계는 극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 화해를 통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지향하고 도덕적 우위에 선 대일 외교를 추구한다는 정신에 비춰볼 때 문 의장이 현재 주도하는 이니셔티브는 시의적절하고도 탁월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원문보기: https://www.sedaily.com/NewsView/1VRXK13314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본교 소속 구성원이 직접 작성한 기고문이기에 게재하였습니다. 출처 : 서울경제|2019-12-03 14: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