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21세기 한국문학 새로운 상상력을 찾아서-7>"내면의 상처 파고드는 상상력 절실" / 방민호(국문)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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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끝)선정작가 좌담::)
올해 출간된 소설집 또는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작품들을 선정, 문학평론가들의 집중적인 리뷰를 소개해온 시리즈 ‘21세기 한국문학-새로운 상상력을 찾아서’가 막을 내린다.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최종회로, 선정된 다섯 작가들중 이만교,김경욱, 정이현씨등 3명이 문학평론가 방민호(국민대) 교수의 사회로 좌담을 가졌다. ◈방민호(이하 방)〓우선 문화일보에서 연재한 ‘새로운 상상력을 찾아서’ 시리즈 기사에 대한 소감부터 한마디 한다면. ◈이만교(이하 이)〓사진이 잘 나왔더라(웃음). 한국문학의 새로운 상상력을 찾아가는 작업을 일간지에서 과감히 진행해줘 젊은작가로서 반가웠다. 아쉬운 것은 다섯 작가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올해 문제작을 내놓은 작가들을 계열화해서 보다 많은 작품을다뤘다면 하는 것이다. ◈정이현(이하 정)〓시의적절한 기획이었다. 특히 김경욱, 이만교, 박민규 등의 작품에서 나타난 새로운 경향에 공감한다. 연말에 올 한해 두드러진 경향을 짚어주면서 젊은 비평가들이 젊은작가의 작품을 읽어주는 것이 바람직했다. ◈김경욱(이하 김)〓잘 봤다. 문단에서 ‘새롭다’라는 이야기가10여년전부터 풍문으로 떠돌았는데 실제 검증하는 작업은 미흡했다. 풍문으로 떠돌던 이야기를 제대로 짚어보자는 문화일보의의도는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이제 단순히 새로운것을 넘어서서 자기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작가에게 필요할것이다. 단순히 새로움만으로 의미를 찾는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소설로 구체화시키느냐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시사점을 던져주는 기획이었다. ◈방〓선정된 작품들에서 나타난 ‘새로움’을 하나의 ‘경향’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이〓변화는 너무나 뚜렷하다. 펼치는 상상력의 방법이 이전 세대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수년 전부터 성석제 배수아 등의 작품에서 꼽히던 새로움이 이제는 소장층을 중심으로 전반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판단이다. ◈김〓예전에는 ‘나는 아프다’는 명제가 공적 담론으로 올라갔지만 지금 세대들은 원체험이 없기 때문에 ‘나는 아프다’라고하면 ‘그래 너는 아프냐’는 반응을 나타낸다. 즉,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는 서사문체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숙주를 찾아나서야 한다. 자기자신에게 숙주가 없기 때문에 영화 풍속 심지어프로야구 기록까지 숙주로 활용하는 것이다. 방법론적으로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 ◈정〓‘새로움’이라는 말은 10, 20년전에도 나왔다. 이미 새롭다라는 말은 낡은 것이 됐다. 우리 세대들은 개인을 앞에 두고사회적 문제를 고민한다. 연애, 결혼 등 제각각 다른 개인의 문제를 사적 영역의 문제로 파악한다. 그러면서 개인 뒤에 있는 사회적 조건에 주목하는 것이다. ◈방〓소장 작가들의 작품이 ‘가볍다’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개인이든 역사든 체험화된 것을 쓰는 것이 앞세대였다면우리는 다양한 일상의 문제, 일상속에 침투해 있는 권력의 문제를 다룬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영상문화나 대중문화의 발달,고도로 발달된 소비자본주의 패턴이 우리를 가로막아 앞세대와단절됐다. 삶을 상상하는 방법이 달라진 것이다. 우리에게 ‘상처’가 없는 것이 아니다.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구조하에서 개인의 욕망까지 (자본주의적) 권력이 통제하고 있으며, 개개인은 부품화돼 어떻게 싸워야 될지를 모르는 지경에이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상상력을 표현해내는 방법이 달라지고 있다. 개인의 체험이나 실존, 역사를 앞세우던 세태에서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새로운 상상력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김〓이전 세대에선 ‘나의 상처가 우리의 상처’였던데 반해지금은 ‘나의 상처가 우리의 상처가 될 수 없는 세상’이 돼 버렸다. 따라서 임상학적 상상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상처를 발견해내는 해부학적 상상력으로 파고들어가야한다. 글쓰기가 더 힘들게 느껴진다. ◈이〓나이든 분들이 젊은 작가들 글에 대해 고정화된 시선으로파악하고 있다. 통기타 세대가 래퍼세대의 음악을 이해 못하듯이젊은 세대가 갖고 있는 상처를 전혀 이해 못하고, 슬픈 노래를하면서 왜 박자가 빠르냐고 묻고 있다. 빠른 곡조의 슬픔을 이해못한다. 빨리 움직이는 세상 사물로부터오는 슬픔, ‘가벼움’에 대해 이해 못하고 있다. 90년대 후반,2000년대에 들어 한국사회의 문화현상이 바뀐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한 작품을 끝내고 나면 또 소설을 써야 하나는 고민에 빠진다. 동화나 시나리오, 또는 시와의 변주는 가능하지 않을까.문학 바깥의 장르와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등등을 고민하게 된다. ◈정〓세상에서 ‘가볍다’라는 말로 자기가 이해 못하는 것을축소시키려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든다. ‘너 소설이 가볍지 않니’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가볍다 무겁다 이분법의 기준은누가 정하는 것일까. 어쩌면 가볍고 무거운 이분법을 전복시키려는 의도도 있다. 방법적으로 하위문화나 대중문화, 즉 연애 사랑결혼 등을 다루면 가볍고 분단이나 가족, 트라우마를 다루면 무거우냐고 되묻고 싶다. ◈방〓작가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예전과 달라졌다고 생각하는가. ◈김〓우리나라에선 전통적으로 문사철(文史哲)의 전통이 강했다. 따라서 문인이란 지사여야 하고 시대에 앞서야 한다는 인식이팽배해 있다. 일종의 순교적 관점으로 작가를 파악해온 것이다. ◈이〓그렇다. 작가의 건강성을 요구하고 있는데 사실 일상성에서 지극히 보수적이면서 정치적으로는 진보인체 하는 기성작가들도 많다. 일상성에서도 진보적인 젊은 작가들이 보면 이해 못할일이다. 예를 들어 앞세대가 늘 ‘담배 끊겠어’하면서도 ‘담배 못끊은쓸쓸함’에 주목한다면, 우리 세대는 ‘난 담배 끊었어, 벌써 15번이나 끊었는 걸’하고 받아넘긴다. 희화적 거리가 유지돼야지만 객관적 파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그런 식의 어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희화나 유머를 사용하게 되면 앞세대에겐 당연히 ‘가볍다’는 느낌을 주겠지. 정:하지만 아이러니나 위트가 잡스럽게 저항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김〓유머 또는 해학이란 우리 문학사에서도 유구하다. 김유정에 이어지는 문학사적 방법인데 이같은 전통적 방법론이 자본주의화되면서 오히려 설 자리가 좁아진게 아닌가 싶다. ‘웃으면복이와요’ 식의 코미디에서 지금은 온갖 탤런트들이 나와서 웃기는 세상이 돼 버렸다. 즉, 현실에선 웃음, 희화화가 보편화됐는데문단에선 여전히 지사적인 작가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성석제 이후로 희화나 유머의 전통에 다시 맥이 닿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지난 80년대 권력에 맞선 유일한 장르가 문학이었다면 지금은 환경문제나 한국현대사를 다루더라도 60분 짜리 TV다큐가훨씬 깊이 있다. 다른 문화장르에서 이처럼 ‘지사적인’ 작품들이 쏟아지는 판국에 문학에선 오히려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할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방〓요즘 작가들을 보면 굉장한 리얼리스트란 생각이다. 자본주의가 현대인의 삶을 얼마나 전일화하고 있는지를 심도있게 파고 들어 정치경제학자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다. ‘자본주의의 전일화’라는 맥락에서 소설을 쓰고 있어 이데올로기는 없지만 굉장히 리얼리스트고 정치경제학자, 분석학자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자본주의가 강력한 구도로 우리의 일상을 조절하는 것이명료하게 보인다. 심사평 중에 제일 맘에 안 드는 것이 실존 존재 역사 등등의 말이다. 니체, 프로이드, 막스로 넘어오는 근대에서 푸코, 들뢰즈까지 오면 우리 삶의 구체성에 치중하고 있다.역시 화두는 자본주의, 개개인의 뼈속 깊이 들어와 있는 자본주의가 아닐까. ◈정〓실존 자체가 이미 그렇다. 자본주의가 100% 관리하고 있다고는 못하지만 실핏줄까지 통제한다. 어렸을 때부터 자본주의의삶에 푹 빠져 있다. 이:치약에서부터 신발, 차, TV 등등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가 훨씬 정교해졌다. 우리 세대는 정교화된 자본주의하에서 삶을 시작한 세대이다. ◈김〓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유포한 논리, 즉 교환의 논리등 자본주의적 관념이 일상 곳곳에 침투해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엔 배타적 영역이 있었는데 지금은 자본주의적 논리가 곳곳에 침투해 있다. 예를 들어, 지금 농촌의 현실은 자유무역협정(FTA)의 문제로 농민들이 멕시코까지 가서 투쟁하는 세상인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하나의 굴곡점이 된 것으로 본다. 국민총생산이 국내총생산 개념으로 바뀌었으며 민족이라는 일차적인 공동체가 깨졌다.이를 계기로 자본주의가 유포하는 논리가 일상 곳곳으로 침투,관철되고 있다. ◈이〓90년대까지만 전통 이데올로기, 안티자본주의적 세계관이내재돼 있었지만 IMF 이후 그런 세계가 완전히 무너졌다. 그런점에서 신세대 작가들은 이미 패배를 맛본 사회에서 출발한 작가들로 볼 수 있다. ◈방〓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을 쓸 건가. ◈정〓소설을 쓴다는 것은 읽는 사람들이 있다는 바탕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특히 그녀)들의 즉각적인 반응들을 보면서 작가로서의 나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다. 독자들과 어떻게 행복하게 또는 전투적으로 만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이〓앞으로 어떤 작품을 쓸 것인지 암울한 상황이다. 한 작품을 끝내고 나면 근원에서부터 다시 고민하게 된다. 이 암울한 상황에서 책을 낸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다. 오늘날 젊은 작가들이살아남는 방법은 ‘모범적인’ 작품을 써서 문학상을 수상하고상금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과연 모범적인 작품을 쓸 수있겠는가 회의가 든다. 한편으론 그런 작품을 써 보자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론 내가‘쓰고 싶은’ 작품을 써서 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를고민하게 된다. 대중들에게 맞는 서사 미학을 구축하면서 문단의답답함을 벗어나는 것…. 혹시 ‘사다리’ 세대가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한 10년정도는 걸릴 것 같다. ◈방〓1950년대 작가들도 비슷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그 위기를이겨낼 때 살아남는 작가가 되지 않을까. ◈김〓두가지 질문이 가장 곤혹스럽다. 문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앞으로 뭘 쓸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소설이 뭘까라는 질문에 덧붙여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방〓예술에 발전은 없다고 하지만 새로움은 늘 있어 왔다. 이번 문화일보 시리즈에 등장한 작가들에겐 과거와 비견되는 속도성, 세련됨, 다채로움이 있다. 앞으로 열매를 맺기를 바란다. 정리〓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kr ▲사회〓방민호(문학평론가·국민대 교수) ▲참석자〓소설가 이만교, 김경욱, 정이현씨 ▲일시·장소〓2003년 12월5일 문화일보 편집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