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시론]놀라운 10대무서운 10대 / 배규한(사회) 교수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는 청소년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대∼한민국’에 열광하는 조국애, 현란한 패션과 보디페인팅, 종일토록 뛰면서도 지칠 줄 모르는 활력, 다양하고 기발한 구호와 동작들, 깔끔한 집회문화와 공중도덕 등은 어른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때 거리로 쏟아져 나온 청소년들은 전혀 어리거나 미숙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의 창의성, 자발성, 참여의식, 그리고 인터넷을 매개로 한 네트워킹 능력 등은 기성세대가 상상조차 못했던 새로운 모습이었다.

어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 새 천년을 전후해 한국 청소년들은 여러모로 ‘놀라운 10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계를 제패한 이창호 기사 등이 이들 10대에게 꿈을 심어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의 스타 보아, 수영의 박태환,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그 외에도 운동선수와 한류 스타들이 아시아는 물론 세계로 수없이 뻗어나갔다.

그런가 하면, ‘무서운 10대’도 어른들을 놀라게 한다. 인터넷 성매매에 이어 지난 며칠 사이 연이어 터진 교내 집단성폭행 사건, 포털 사이트의 음란물 동영상 유포, 건물을 폭파하겠다는 협박전화, 자신이 다니는 학교 건물 방화 사건, 여자친구에게 접근했다고 친구를 폭행 후 구덩이에 묻은 사건 등은 모두 중고생들이 저지른 일이었다.

질병관리본부 조사에 따르면, 비행으로 이어지기 쉬운 흡연과 음주 시작 평균 연령도 부쩍 낮아졌다. 1998년과 비교할 때 흡연은 15세에서 12.4세로, 음주는 15.1세에서 12.7세로 낮아진 것이다.

어떻게 이처럼 ‘놀라운 10대’와 ‘무서운 10대’가 등장하게 됐는가. 흔히들 경제성장과 국력 신장의 결과, 한국인의 우수성, 부모의 뜨거운 교육열과 헌신적 뒷받침이 놀라운 10대를 탄생시킨다고 한다.

반면에 무서운 10대는 폭력적 게임, 저급한 정보 홍수, 가정과 학교의 인성교육 및 관리·감독 부족 등이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과연 전혀 다른 모습의 두 집단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사실은 물질적 풍요와 과외수업, 게임과 인터넷, 자기중심적 생활 등 동일한 환경에서 성장한 세대이다.

인간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동물적 개체에서 사회적 구성원으로 성숙해 간다. 균형과 일관성 속에 잘 이루어진 사회화 과정은 원숙한 사회인을 길러내지만 모순과 혼란으로 점철된 사회화 과정은 뒤틀린 인성의 일탈자(逸脫者)를 낳게 된다.

우리 청소년의 상반된 두 가지 모습은 강한 사회적 성취 욕구와 자기중심의 선택적 행동이라는 동일한 뿌리에서 자라났으되 서로 다른 유형이다. 올바른 가치관과 윤리의식, 사회적 규범과 행동양식을 길러주는 사회화 기제(機制)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극단적 일탈 유형이 나타나는 것이다.

산업사회에서 사회화의 주요 대행자였던 가정과 학교, 지역공동체 등은 정보사회로 진입하면서 그 기능을 상실했다. 그러나 이를 대체할 새로운 사회화 기제는 아직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휴대전화 등 뉴미디어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이들을 제어할 제도적 장치는 아직 만들어지지 못했다.

무한한 잠재력과 열정을 지닌 우리 청소년들이 디지털 시대의 글로벌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화 메커니즘을 모색하고 정착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산업사회를 맞이해 핵가족·공식 교육·대의민주주의 등의 새로운 제도를 형성했던 것처럼, 이제는 정보사회에 부응하는 새 가족 형태와 구성원 간 상호작용 양식, 자기탐구적 평생학습 제도, 뉴미디어 시대의 사회 규범과 윤리, 네트워크 시대 공동체적 삶의 양식과 사회통제 방식 등을 창안하고 정착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원문보기 : 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4011358000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