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너섬情談-이경훈] 매트릭스, 그 후 20년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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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트릭스’가 개봉한 지 꼭 20년이 되었다. 1999년은 새로운 세기, 새 천년을 맞이하는 흥분과 설렘이 가득했다. 주식시장의 닷컴 열풍이 희망을 대표했지만, 영화는 다가올 디스토피아를 어둡게 그리고 있었다. 영화에서 인류는 극도로 발달한 기계문명과 전쟁에서 패하고 기계의 에너지원으로 사육당하는 처지가 된다. 대신에 기계가 주입한 가상현실을 실재로 믿고 살아간다. 정교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가능해 실재와 가상의 구분이 어려운 시대에 ‘진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새 천년은 시작되었다. 이후로 영화는 문화비평의 중요한 텍스트로 인용되었다. 영화 초반부에 주인공에 주어진 선택을 상징하는 ‘빨간 약’의 대사가 대표적이다. 고통스럽지만 실제에 다가가는 자유의지를 가리키는 일종의 관용어로 자리를 잡을 정도다. 다른 유명한 대사는 ‘실재의 사막’이다. 빨간 약을 선택한 주인공이 보게 되는 매트릭스 밖에 실재하는 처참한 현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TV를 통해 세계의 비극과 참상을 감상하는데 익숙한 미국인들에게 영상과 실재가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충격이 있었다는 것이다. 가상과 현실이 뒤섞여 구분이 어려운 정도에 도달한 최초의 21세기적 경험이라는 진단이다. 매트릭스의 경고 이후에도 건축은 여전했다. 건물은 벽돌과 콘크리트로 실제로 지어졌다. 다만, 디지털 기술로 이전까지는 사람의 손으로는 그리거나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건물도 가능해졌다. 인터넷의 위력과 효과는 건축의 개념적 측면에 빠르게 영향을 미쳤다. 일시적이며 감각적으로 지어지는 건물이 많아졌다. 기능이나 구조보다 외관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고 임시로 지은 듯한 화려한 무대장치 같은 건물들이 지어졌다. 건축가는 근엄한 창조주의 자리에서 내려와 다양한 정보를 다루는 조정자로 역할이 바뀌었다. 도시의 변혁은 더욱 급격하며 파괴적이다. 공간의 제약을 넘어 소통할 수 있는 점이 인터넷의 특성인데 바로 이 점 때문에 도시 공간은 일대 위기를 맞이한다. 이미 쇼핑몰과 대규모 기업형 마트로 골목상권은 취약해져 있었다. 여기에 모바일로 진화한 인터넷이 도시의 핵심기능이라 할 수 있는 상행위를 장악하고 실제 도시 공간과 장소를 위협한다. 상업은 단순한 교환의 의미를 넘어 사람 간의 교류를 만드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상점을 가상공간에 넘겨주고 나서 도시의 실제 공간은 공허하고 피폐해져 간다. 가상과 실재의 모호한 혼재는 ‘살고 있는 도시’와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도시’ 같이 실재와 가상의 분열을 심화한다. 실제로는 걷기에 불편하고 이웃과 교류도 적으며 쇼핑조차 인터넷으로 해결하지만, 영화와 TV, 광고 같은 미디어로부터 주입된 상상의 도시에서는 상점이 즐비하고 근사한 가로수가 펼쳐진 거리에 살고 있다. 이 분열이 도시의 표피적이며 일시적인 문제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도시는 수천년 전부터 효율적인 인간의 주거형태였다. 도시에서 산업이 일어나며 문화가 생겨나고 수많은 인류사적 도약이 이루어졌다. 도시는 전염병이나 전쟁과 같은 재앙에도 살아남았다. 새로운 기술에서 비롯된 위협도 이겨내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백년 전, 자동차가 등장했다. 교외에 집과 쇼핑몰을 짓고 대거 탈출한 미국인들이 장소와 이웃을 찾아 도심으로 되돌아온 것이 좋은 예이다. 미국의 도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도시가 사람과 자원이 ‘모이는’ 실제의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TV나 비디오 같은 새로운 매체가 출현할 때마다 전통적인 극장, 영화관의 존립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그렇지만 관객이 함께 모여서 관람하는 영화관은 살아남아 멀티플렉스로 진화한 것과 같다. 아날로그의 날것이 있는 공연장은 여전히 만원인 것과 마찬가지다. ‘모이는’ 장소로서 도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도시의 힘은 여전할 것이다. 건축은 따뜻하고 인간적인 장소를 제공하고 도시는 사람이 중심인 공간으로 엮어내야 한다. 빨간 약을 꿀꺽 삼키고 실재의 사막을 마주하고 도시의 진짜 문제를 바라보자. 20년 후 되돌아보는 2020년은 어떤 느낌일는지 궁금해진다. 따뜻하고 인간적인 도시가 부활한 해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원본보기: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14632&code=11171426&cp=nv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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