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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에 풍덩’ 우승자만의 특권… 1988년 美 올코트가 처음 시작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ANA인스피레이션 ‘축하 의식’

기쁨에 우발적으로 뛰어들어
1994년부터 전통으로 이어져
 올 이미림 등 韓선수 6명 경험

 원래는 자연적인 워터해저드
 우승자들 매년 세리머니 하자
 깨끗한 물로 수영장 수준 관리

KLPGA 제주삼다수 마스터스
 물허벅에 삼다수 채워 끼얹어


얼마 전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ANA인스피레이션에서 한국의 이미림이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마지막 날 선두에 2타 뒤진 상황에서 마지막 홀의 극적인 칩샷 이글로 공동선두가 된 뒤 연장전을 치러 일군 성과다. 짜릿했다. 이미림의 이번 우승은 그린을 놓친 후 칩샷으로만 버디 2개와 이글 1개를 잡는 등 행운도 따랐다.

ANA인스피레이션은 1972년 미국의 생활용품 기업인 콜게이트-팜올리브와 인기 배우이자 가수인 다이나 쇼어에 의해 창설됐고, 1983년부터 메이저대회로 승격됐다. 매년 3월 말이나 4월 초에 시즌 첫 메이저대회로 열렸지만,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부득이하게 9월로 연기됐다. ANA인스피레이션은 한국 선수와 인연이 깊은 편이다. 지난 2004년 박지은을 시작으로 2012년 유선영, 2013년 박인비, 2017년 유소연, 2019년 고진영, 그리고 올해 이미림까지 한국인이 6차례나 정상에 올랐다.

우승 직후 이미림은 캐디와 함께 18번 홀 아일랜드 그린 옆에 있는 ‘포피의 연못’에 뛰어들었는데, 이 우승 축하의식은 1988년부터 시작된 이 대회의 오랜 전통 중 하나다. 포피의 연못은 처음엔 ‘챔피언의 호수’로 불리었으나 2006년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이름이 바뀌게 된 이유는 1994년부터 14년 동안 대회 운영책임자로 일했던 테리 윌콕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포피는 윌콕스의 손주들이 할아버지를 부를 때 쓰던 애칭이다.

처음 포피의 연못에 뛰어든 챔피언은 미국의 에이미 올코트였다. 그는 이 대회에서 3번이나 우승했는데 1988년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 뒤 기쁨에 겨운 나머지 캐디와 함께 우발적으로 물에 뛰어들었다. 1991년 세 번째로 우승하자 올코트와 캐디는 물론 대회 창립자인 쇼어까지 함께 연못에 뛰어들어 큰 관심을 끌었다.

이후 다른 우승자들은 물에 뛰어들지 않았으나, 1994년 도나 앤드루스와 이듬해 낸시 보웬(이상 미국)이 잇달아 우승 직후 올코트의 뒤를 따라 연못에 뛰어들면서 비로소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됐다.

물에 뛰어드는 자세는 챔피언마다 달랐는데, 수영을 전혀 못하던 1998년 우승자 팻 허스트(미국)는 무릎 깊이 정도까지만 살짝 걸어 들어가 갤러리들의 야유를 받았다. 2001년 챔피언인 스웨덴의 애니카 소렌스탐은 마치 수영선수처럼 과감하게 머리부터 입수한 최초의 챔피언이었다. 2006년 호주의 캐리 웹은 캐디와 동시에 몸을 동그랗게 마는 이른바 ‘캐넌볼’ 자세로, 마치 싱크로나이즈드 다이빙처럼 멋지게 입수해 감탄을 자아냈다. 2008년 멕시코의 로레나 오초아는 멕시코 전통악단인 마리아치의 축하연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가족, 친구 등 무려 20명에 가까운 사람과 대규모로 입수하는 장관을 연출했다.

대회가 끝난 후 해가 질 무렵에 차가운 물로 뛰어들다 보니 크고 작은 사고가 없지 않았다. 2011년 챔피언이었던 미국의 스테이시 루이스는 캐디는 물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과 함께 연못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가 그만 연못 둘레의 둑 가까이에 떨어지는 바람에 종아리뼈가 골절됐고 응급차에 실려 근처 병원으로 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포피의 연못은 한가운데 깊이가 대략 160㎝ 정도로 원래는 아일랜드 그린 주변에 자연적으로 조성된 워터해저드였다. 현재는 골퍼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콘크리트로 워터해저드 사이에 경계를 만든 뒤 깨끗한 물을 채워 수영장 수질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와 유사한 우승 축하의식이 없다. 하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는 대회들은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제주삼다수마스터스를 꼽을 수 있다. 지역 특색을 살려 과거 제주에서 여성들이 물을 길어 나를 때 썼던 일종의 항아리 ‘물허벅’에 삼다수를 가득 채워 우승자의 머리에 끼얹는 의식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 하이트진로챔피언십 우승자에게 맥주 세례를 퍼붓거나, 제주에서 열리는 롯데칸타타여자오픈에서 우승자가 제주 특산물인 조랑말 마차를 타고 시상식에 등장하는 것도 이색적인 축하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롯데렌터카여자오픈에서는 매년 우승자가 최신 자동차를 타고 시상식에 입장하는데, 지난해에는 차량 문이 마치 새의 날개처럼 위로 열리는 고가의 미국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의 최신형 모델이 등장해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국민대 골프과학산업대학원 교수
 스포츠심리학 박사

 


원문보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01005010318390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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