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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을 꿰고 깨고… 삶의 파노라마를 엮다 [김한들의 그림 아로새기기] / 김한들(행정대학원) 겸임교수

(41) 라이자 루 ‘선데이 모닝’
구슬 주재료로 개념적인 것 탐구
작품 ‘키친’ 구슬 3000만개 사용
익숙한 장소를 예술로 변모시켜
‘선데이 모닝’ 지역 여성들과 협업

 고운 색의 비즈들이 모여 화면을 채운 ‘선데이 모닝’.(2019) 화면 밖으로 나온 천 한 조각에서 자유와 새로운 가능성이 보인다. 사진 조쉬 화이트. 리만머핀 제공

◆일상이 끔찍함으로 넘쳐나는 시대, 예술이 가치가 있을까?

미술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일찍이 감염병의 여파를 경험한 미술계는 한동안 문을 닫아야만 했다. 문을 닫은 동안 안전하게 관람객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비대면 방식의 소통을 이어가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이러한 준비를 끝낸 뒤에 재개장해 손님들을 맞았다.

하지만 끝내 한 국립박물관 직원 중 확진자가 나왔다. 다행히 관람객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게 일했지만, 박물관은 문을 다시 닫았고 언제 개관하게 될지는 미정이다.

이 소식을 알리는 뉴스들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나를 생각에 빠져들게 했다. 문화와 미술 감상을 사치처럼 여기는 말들이었다. 꼭 지금 이 시기가 아니더라도 그 말은 해당되는 듯 보였다. 지난해 읽었던 한 작가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자연환경 파괴 등 일상이 끔찍함으로 넘쳐나는 시대에 예술을 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예술작품이 가치가 있나?”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작가였다. 그는 “결국 일상이 끔찍하기에 아름다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슬이 노동을 미적으로 승화 방법

 인터뷰의 주인공인 라이자 루(Liza Lou, 1969∼)는 1969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현재 로스앤젤레스에서 거주하며 활동 중이다. 작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위치한 자이츠 현대미술관,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현대미술관, 뒤셀도르프 쿤스트 팔라스트 미술관, 플로리다 마이애미 배스 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그 외 남아프리카공화국 내셔널 갤러리, 예루살렘 이스라엘 미술관,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뉴욕 뉴뮤지엄 및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품 앞에 서있는 라이자 루. 사진 쑹 쯔후이. 리만머핀 제공

그의 작품은 높이 평가받아 세계 유수의 기관들이 소장하고 있다.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미술관을 비롯해 샌프란시스코 드 영 미술관, 뉴욕 휘트니 미술관 등이다. 스키라 리졸리에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모노그래프를 출판하기도 했다. 미술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출판사 중 특히 세계적으로 중요한 곳이라 의미가 있다.

이렇게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그의 작업은 구슬을 주재료로 다룬다. 작가는 구슬을 물리적인 대상인 동시에 개념적인 것으로 탐구한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전통적 미술 재료가 아닌 구슬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깬다. 동시에 회화와 조각, 두 장르로 모두 볼 수 있는 예술을 만들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루의 작품은 결국 자유란 오히려 한계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메시지다.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천장을 깨부수면 그 위에 끝없는 하늘이 있다.

루의 이름을 알린 작품은 ‘키친(Kitchen)’(1991~1996)이다. 휘트니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형설치 작품이다. 루는 1991년부터 1996년까지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혼자 구슬을 꿰었다. 핑크색, 파란색, 노란색, 하얀색 등 총천연색 구슬 3000만개를 사용했다. 이렇게 그가 만들고 만들어 낸 것으로 뒤덮은 것은 부엌과 그 안의 사물들이었다. 그는 이를 통해 일상생활 속 익숙한 장소를 예술적 실천의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그리고 작업에 있어 ‘인내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작업’이라는 평을 받았다.

◆‘선데이 모닝’

루의 작업 세계는 시간이 흐르며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최근에는 주로 사용했던 원색의 구슬 대신 무채색의 구슬이 등장했다. 그리고 작가는 자기의 예술 세계에 사람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키친’을 위해 오롯이 혼자 구슬을 꿰던 몇 년간의 모습과 다르다.

 


‘선데이 모닝’에서 느낀 작품이 가진 자유가 더 크게 느껴지는 ‘나이트송’.(2019) 작품의 형태는 회화와 조각 사이에서 얽매이지 않고 존재한다. 사진 조쉬 화이트. 리만머핀 제공

루는 2005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동부의 콰줄루나탈에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구슬 공예로 유명한 이 지역의 줄루족 여성들과 협업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손수건 크기의 천에 구슬을 꿰어내면 작가는 그것을 다시 작업했다. 그 위에 때로는 그림을 그리기도, 망치로 구슬을 깨뜨리기도, 뜯어서 비우기도 했다. 이렇게 그들의 손놀림은 하나의 천 위를 오가며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직조된다.

‘선데이 모닝(Sunday Morning)’(2019)은 이러한 근래의 작업 경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작은 크기의 천 위에는 고운 색의 구슬들이 자리 잡고 있다. 루와 작업실의 여인들이 한 땀 한 땀 손으로 꿰매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성심성의껏 완성한 작은 천은 한자리에 모여 커다란 화면을 만들어 낸다. 각자가 가진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동시에 합쳐진 화면의 아름다움을 배가시킨다. 화면 밖으로 나온 한 장의 천에서는 개별이 가진 존재감은 물론 자유까지 느껴진다.

작품의 앞에 서면 한참을 머물게 된다. 전시장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의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빛과 어우러진 구슬은 제목인 일요일 아침처럼 부드럽게 빛난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맑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안료 b 와 섞지 않은 날 것의 색채를 색조 변화도에 따라 그룹화해 보여준다. 이를 통해 유화에 조각적인 성질을 부여하고, 그려졌기보다 주조했다고 느끼게 한다.

◆고정관념의 한계를 깨고 나와 예술을 본다면

 루가 한국에서 개최한 첫 번째 개인전 제목은 ‘강과 뗏목(The River and the Raft)’이었다. 이는 불교 경전에 나오는 ‘뗏목’ 우화에서 비롯했다. 한 남자는 길을 가다 자신이 건너야 하는 강을 마주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배 한 척도, 건널 수 있는 다리도 없다. 결국 그는 나뭇가지들과 밧줄을 엮어 뗏목을 만든다. 덕분에 남자는 안전하게 반대편 강둑에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 그는 뗏목에 대한 질문에 휩싸이게 된다. ‘무겁고 번거로울지라도 이것을 계속 가지고 가야 할까? 이 이야기는 우리가 추구했던 일을 위해 들였던 공과 시간의 가치를 내려놓는 일에 관한 교훈을 준다. 상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홀가분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세계적 경제학자 겸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최근 ‘제11회 문화소통포럼’에 연사로 참여했다. 화상으로 사람들을 마주한 그는 지금과 같은 때에 예술의 역할이 중요해진다고 강조했다. 언제나 예술은 불멸을 지향하는 간절한 몸짓이었으며 삶의 충만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예술이 사치라는 생각에서 한번 벗어나 보면 어떨까? 자유란 오히려 한계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루의 말처럼 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순간 당신은 예술을 진정으로 향유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순간 당신의 삶은 ‘뗏목’ 우화에서처럼 홀가분하게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예술은 인간의 표현이자 세상의 기록이며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이 쌓여서 이루는 삶은 그 전보다 항상 수월하게 나아간다. 세상 역시 마찬가지다.

김한들 큐레이터 / 국민대학교 미술관,박물관학 겸임교수

 


원문보기: http://www.segye.com/newsView/20200909527930?OutUrl=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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